무라카미하루키 ‘세계의끝과하드보일드원더랜드’


내 인생의 장밋빛 광채가, 35년 동안에 이미 93퍼센트나 다 써서 닳아 없어져 버렸다 해도 전혀 상관없다. 나는 다만 나머지 7퍼센트만이라도 소중하게 가슴에 품은 채로, 이 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를 무한정 바라보면서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 까닭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하나의 책임인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두말할 것도 없이 어떤 시점에서부터인가 내 인생과 삶의 방식들을 일그러뜨리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까지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누구도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뒤틀린 인생을 남겨 두고 소멸해 버리고 싶지 않다. 내게는 내 뒤틀린 삶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봐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나 자신에 대한 공정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나는 나의 삶을 그대로 남겨 두고 홀로 갈 수는 없는 것이다.

나의 소멸이 어느 누구에게도 슬픔을 주지 않고, 또 어느 누구의 마음에도 공허함을 남기지 않는다 해도, 혹은 또 어느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해도, 그것은 단지 나의 문제다. 분명히 나는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 것을 잃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더 이상 잃어버릴 것은 나말고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묘하게도 내 안에는 상실된 것들의 잔재가 마치 앙금처럼 남아 있어, 내가 지금까지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나는 이 세계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지 않다.

눈을 감자, 마음의 동요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슬픔이나 고독감을 넘어선, 나 자신의 존재를 뿌리째 뒤흔드는 듯한, 깊고 커다란 물결이었다. 그 물결의 일렁임은 언제까지나 계속되었다. 나는 벤치의 등받이에 팔꿈치를 대고, 그 일렁거림을 견뎌 내고 있다. 아무도 나를 도와 주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구제할 수 없는 것이다. 바로 내가 그 누구도 구제할 수 없는 것과 똑같이.

순간 소리내어 울고 싶었다. 하지만 울 수 없었다. 눈물을 흘리기에는 너무나도 나이를 먹었고, 너무나도 많은 일들을 경험해 왔다. 이 세계에는 눈물조차도 흘릴 수 없는 슬픔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것은 그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고, 혹시라도 설명이 가능하다고 해도,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것이다. 그런 슬픔은 다른 어떤 형태로도 바뀌어지지 않고, 다만 바람 없는 밤의 눈처럼 그냥 마음에 조용히 쌓여 가는 그런 애달픈 것이다.

무라카미하루키 ‘세계의끝과하드보일드원더랜드’중에서

하루키 재즈에세이 –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

젊었을 때는 꽤나 빌리 홀리데이를 들었다. 그 나름으로 감동도 하였다. 하지만 빌리 홀리데이가 얼마나 멋진 가수인가를 정.말.로. 알게 된 것은 휠씬 훗날의 일이다. 그러니 나이를 먹는다는 것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옛날에는 1930년대에서 40년대에 걸쳐 녹음한 그녀의 음반을 즐겨 들었다. 그녀가 아직 젊고 싱그러운 목소리로 열심히 노래한 시대의 노래들이다. 나중에 미국의 콜럼비아 레코드 사는 그 대부분을 재녹음하여 음반을 내놓았다. 그 음반들은 믿기지 않을 만큼 충만한 상상력으로 넘실거리고,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높이 비상한다. 그녀의 스윙에 맞추어 세계가 스윙하였다. 지구 그 자체가 흔들흔들 흔들렸다. 과장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예술이 아니라 마법이었다. 그런 마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할수 있는 사람은, 내가 아는 한 그녀를 제외하면 찰리 파커 한 사람뿐이다.

그러나 마약에 절어 목소리가 망가진 이후, 버브 시대의 그녀의 녹음은 그다지 열심히 듣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멀리했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1950년대 들어서부터는 너무 애처롭고 무겁고 감상적으로 들렸다.

그런데 점점 나이를 먹어 30대가 되고 40대가 되자 오히려 그 시대의 레코드를 즐겨 턴테이블 위에 올려놓게 되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몸과 마음이 그 음악들을 바라게 된 모양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퇴.락.했다고도 할 수 있는 빌리 홀리데이의 만년의 노래에서 내가 들을 수 있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나? 그에 관해서 여러 가지 생각해 보았다. 그 안에 있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왜 나를 그렇게 강하게 흡인하는 것인지?

어쩌면 그것은 ‘용서’같은 것이 아닐까— 최근 들어 그런 느낌이 든다. 빌리 홀리데이의 만년의 노래를 듣다보면, 내가 삶을 통하여 또는 쓰는 일을 통하여 지금까지 저질러온 많은 실수와 상처를 입힌 사람들의 마음을, 그녀가 두말없이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그것을 전부 한꺼번에 용서해주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제. 그.만. 됐.으.니까. 잊.어.버.려.요. 라고 그것은 ‘치유’가 아니다. 나는 절대로 치유되지 않는다. 그것은 무엇으로 치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용서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런 느낌은 너무도 개인적이다. 나는 이 느낌을 일반적으로 부연하고 싶지는 않다. 따라서 내가 꼽고 싶은 빌리 홀리데이의 가장 멋진 음반은 역시 콜롬비아 판이다. 굳이 그 안에서 한 곡을 들라면 주저없이 ‘그대가 미소지으면’을 고를 것이다. 곡 중에 들어 있는 레스터 영의 솔로도 숨이 막힐 만큼 천재적이다. 그녀는 노래한다.

‘그대가 미소지으면, 온 세상이 그대와 함께 미소짓는다. When you are smiling, the whole world smile with you.’ 그리하여 세상은 미소 짓는다. 믿을 수 없을지 모르지만 정말 싱긋 미소짓는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재즈 에세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