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2월에 읽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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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천재들
– 에디슨의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 진다’는 말은 노력의 중요성을 말하는 명언이지만 실제로 천재는 50%의 영감과 50%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고 나는 생각한다. 범인이 아무리 노력해봐야 전구나 축음기같은건 못만들어낸다. 범인이 노력하면 어느정도 경지에 이를 수 있지만 가장 바람직한 건 역시 천재가 노력도 하는 경우다. 이 책에는 한국사를 통틀어 천재였고, 시대를 앞서 나갔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들은 시대의 상식과 맞서 싸웠고 권위와 싸웠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 시대에 환영받지 못했다. 현재 한국이라는 나라는 천재를 부러워하나 또 그만큼 천재를 배척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어차피 인간은 똑같은 머리와 능력을 가질 순 없다. 또한 인간은 혼자 살 수 없기에 능력 있는 자가 앞서가서 뒤쳐진 자들을 끄는 구조 또한 바람직하다. 천재였지만 인정받지 못했거나 천재였기에 시대를 이끌었던 한국사의 천재들을 통해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바를 알려주는 책.

연애소설 – 가네시로 가즈키의 진지한 연애소설. 가즈키만의 읽기 편한 문체는 여전하지만 너무 진지하다보니 왠지 가즈키의 소설같지 않다. 약간은 진부한 면도 있고, 단편소설은 별로 안 좋아해서 그런지 그냥 그랬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책표지는 촌스럽지만 책을 읽어보면 기절한다. 남녀간의 사랑에 마르크스까지 등장하면 말 다했다. 이 책은 연애소설이지만 남녀간의 만남에서 헤어짐에 이르기까지를 철학적으로 분석해 수많은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이유, 또 그 사이에 느끼는 감정을 철학적으로 설명해 준다. 작가의 관찰력과 통찰은 정말 기절할 수준이다.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최고의 연애학 개론’이라 칭하는 만큼 한번쯤은 꼭 읽어볼 만한 책이며, 나중에 애인이 생기게 된다면 꼭 다시 한번 읽고 싶은 책이다. 물론 지금은 애인이 없기에 객관적으로 읽었지만…

누가 왕을 죽였는가 – 2002년에 나온 책인데 웃기게도 제목을 ‘조선왕 독살사건’으로 바꾸고 사진을 곁들여 작년에 재발매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역시 제목이 중요하긴 중요한 가 보다. 어떻게 보면 씁쓸하기도 하고… 아무튼 난 그것도 모르고 옛날책을 봤다. 옛날책은 사진도 없고 글 뿐이다. 그래도 무척 흥미있게 본 책이다. 조선만큼 왕이 많이 독살당한 경우도 없다. 정조도 몇번의 독살 위협을 당했을만큼 조선의 왕은 힘없는 존재였다. 중국은 왕이 강하고 신하가 약했지만 반대로 조선은 신하가 강하고 왕이 약했다. 어느쪽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독살당했거나 의혹을 받은 왕이 많은 것만큼 안타까운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소현세자나 효종, 현종, 정조의 의문의 죽음은 한국사람이라면 몇번을 생각해봐도 아쉬운 일이다.

광해군 : 탁월한 외교정책을 펼친군주 – 조선임금중 조,종이 붙지 못하고 군이 된 임금은 노산군, 연산군, 광해군 3명이다. 노산군은 후에 단종으로 복위되었고, 연산군은 워낙 무개념이었기에 별 할말이 없지만 광해군은 왜 인조반정으로 쫓겨나 ‘군’이 되어야 했을까? 이 책은 그런 광해군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다. 그느 원래 후궁의 둘째 자식이므로 도저히 왕이 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그의 형은 임금의 자질이 없었고 임진왜란으로 인해 광해군은 엉겁결에 세자가 된다. 임진왜란때 세자로써 뛰어난 활약을 보이고 왕이 된 뒤에는 대동법을 시행하고, 5대 사고를 새로 만들고, 소실된 궁궐을 새로 만들며, 청과 명 사이에서 명분이 아닌 실리를 추구하는 외교에 힘쓰지만 서인들에 의해 그는 임금의 자리에서 끌어내려진다. 그는 청과의 외교관계에 많은 힘을 쏟았지만 명분론자들에게는 명과의 ‘재조지은’을 저버리는 행위일 뿐이었다. 사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때 나라가 망해버리고 새왕조가 들어섰다면 차라리 명분뿐인 시대착오적 학문인 성리학은 더이상 이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삼전도의 굴욕을 통해 조선은 명을 이어갔고, 대부분의 사대부들은 그 후로도 아무것도 뉘우치지 못하고 명분뿐인 싸움을 계속 해나갔다. 김종서가 죽지 않았더라면, 소현세자가 죽지 않았더라면, 정조가 죽지 않았더라면 하는 가정을 하는것만큼이나 ‘광해군이 왕위에서 물러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하는 가정은 아쉬움만을 남길 뿐이다.

Speed – 레볼루션no.3에 이어지는 더좀비스의 활약. 주인공이 여고생이어서 칙칙한 녀석들만 나오는 것보다는 좋았다. 연애소설에 나오는 다니무라 교수도 나오고 레볼루션no.3와 플라이데디플라이의 연장인만큼(플라이데디플라이는 안봤지만) 무난하게 읽을 만 했다.

유리문 안에서 – 나쓰메소세키의 수필집. 오랜 위궤양으로 병석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던 소세키의 사적인 삶, 그의 소설 주인공을 통해 드러내는 소세키 자신의 성격을 수필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이 수필을 보면서 자신의 정신세계의 표현방법과 사물을 바라보는 태도가 하루키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역사에게 길을 묻다 – 우리가 중고등학교때부터 배웠던 두가지 역사연구 방법이 있는데 랑케의 실증주의, 카의 해석주의다. 물론 중고등학교때는 이 연구방법조차도 그냥 암기만 했다. ‘실증주의고 해석주의고 내 알바 아니다’라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젠장할 대한민국 학교들은 무조건 암기만 가르친다. 대부분의 보통 인간이라면 중등학교 국사에 흥미를 가질 수가 없다. 무슨 죄다 외우는 것 뿐이다. 시험도 객관적 사실을 고르는 것이나 불상 이름 적기, 무슨 문화재 이름 적기 이따위 것들 뿐이었다. 그러니 무슨 흥미를 가질 수가 있는가? 이에 이덕일은 말한다. 왜 우리나라에 국사교과서는 하나밖에 없는지, 왜 그 교과서에는 단순한 사실만을 나열해 국사선생들조차 외면하는지, 한국실증사학의 뿌리가 된 이병도라는 학자가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이 무엇인지, TV의 역사드라마의 역사왜곡은 무엇인지 등등을 통해 역사에게 길을 묻는 방법을 말한다. 한국의 역사 교육은 실증사학의 영향으로 단순한 사실만을 나열했기에 지루할 뿐 아니라 학생들에게 사관을 심어줄 수가 없었다. 그러니 요즘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역사왜곡에 화를 내기만 할 뿐 반박하는 법을 모른다. 한국만큼 역사교육에 무관심한 나라도 드물다. 종합대학에선 컴퓨터교육이니 외국어교육이니 그런것은 교양필수로 꼭 집어넣으면서 국사교육은 교양선택에서조차도 비인기 강좌다. 역사란 그저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의 대화란 것이 카의 해석주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과거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임을 알면서도 무시한다. 이제 한국에도 좀 제대로 된 국사 교육이 필요하다.

(당쟁으로 보는)조선역사  – 이덕일의 초기 역사서. 선조~세도정치기까지 당을 통한 국가 통치의 전개를 개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가 후에 낸 책들의 내용과 겹치는 부분이 많긴 하지만 흐름을 한번에 훓어볼 수 있어 좋았다. 조선시대 붕당과 현대 정당과의 비교 부분은 취할만 한 점이 있었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 ‘노르웨이의 숲’이후로 꽤 진지하게 읽은 책이다. 최근 하루키는 도쿄기담집이라든가, 어둠의 저편같은 책을 발표했는데 하루키 팬들에게 꽤 험담을 듣고 있기 때문에 읽어 보지 않았다. 이제 하루키도 별 수 없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서 그래도 역시 하루키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하루키는 이런 책 한권만으로도 무시할 수 없는 작가다. 이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주인공의 옛친구가 하는 이야기였다. 친구는 디즈니의 ‘사막은 살아있다’에서 사막에는 식물, 그리고 동물들이 살아가지만 언젠가는 다 사라지고 또 생겨나고를 반복한다고 한다. 결국 인생도 그렇다는 것이니 별로 상심하지 말라는 것이다. 주인공은 어린시절 좋아하던 그녀를 다시 만난다. 하지만 주인공은 이미 결혼해서 애까지 있는 상태다. 그녀와 주인공은 여행을 가지만 그 다음날 그녀는 사라진다. 이게 이 소설의 대체적인 줄거리다. 노르웨이의 숲에는 이런 부분이 있다.

하쓰미라는 여성 속에는 뭔가 사람의 마음을 강하게 뒤흔드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그녀 스스로가 강한 힘을 내어 상대를 뒤흔드는 게 아니었다. 그녀가 발산하는 힘은 작았지만 그것이 상대의 마음에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택시가 시부야에 이를 때까지 나는 줄곧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고, 그녀가 내 마음속을 일렁이게 하는 이 감정이 흔들림의 정체가 과연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끝까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그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 것은 12년이나 13년 뒤의 일이었다. 나는 어떤 화가를 인터뷰하기 위해 뉴 멕시코 주의 산타페 거리에 있었는데, 해거름에 근처의 피자 하우스에 들러 맥주와 피자를 먹으며 기적처럼 아름다운 석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계의 모든 것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내 손과 접시, 테이블에 이르기까지 눈에 비치는 모든 것이 온통 붉게 물들고 있었다. 마치 특수한 과즙을 머리끝에서부터 뒤집어쓴 것처럼 온통 선홍색 일색이었다. 그러한 압도적인 석양 속에서 나는 문득 하쓰미를 생각해 냈다. 그리고 그때 그녀가 일으킨 내 마음의 소용돌이가 과연 무엇이었던 가를 이해했다. 그것은 채워질 수 없었던,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채워질 수 없을 소년기의 동경과도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러한 타오르는 순진 무구한 동경을 벌써 까마득한 옛날에 어딘가에 놓고 잊어버려 왔기에, 그러한 것이 한때 내 속에 존재했다는 것조차도 오랫동안 생각해 내지 못한 채 살아온 것이다. 하쓰미가 뒤흔들어 놓은 것은 내 속에 오랫동안 잠자고 있었던 나 자신의 일부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거의 울어 버릴 것 같은 슬픔을 느꼈다. 그녀는 정말로, 정말로 특별한 여자였다. 누군가가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구원했어야만 했다.

주인공에게 그녀는 하쓰미와 같은 의미를 가질지도 모른다. 어린시절의 무구한 동경같은 것. 채워질 수 없는 것. 어쩌면 그는 그녀를 만나지 말아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이란 그렇게만은 될 수 없다. 어쨌든 그는 그녀를 만났고 그는 새로운 삶을 가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사막의 생물과 같다. 결국은 다 사라진다. 하지만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끊임없이 꽃이 피고 지며, 동물이 태어나고 죽기 때문이다. 그런 것이 없다면 사막은 달과 다를 바 없다. 또다시 ‘노르웨이의 숲’에서 와타나베는 죽은 나오코를 꿈에서 만난다. 그녀는 말한다. 그저 죽은일일뿐이니 마음쓰지 말라고… 나 여기 있지 않냐고… 하루키는 여전히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상실. 그렇지만 계속되는 삶.

천사들의 제국 – 타나토노트의 연장인 책. 타나토노트를 본지 워낙 오래되서 등장인물 생각이 잘 안났지만 그것과는 별 관계없이 읽을 수 있었다. 베르나르베르베르는 글을 재미있게 쓸 줄 아는 재주는 별로 없는 작가지만 상상력 만큼은 인정한다. 각 은하마다 지구같은 별이 하나는 있을 것이라는 것과 거기에도 각각의 지도천사들이 있을 것이라는 설정은 타나토노트를 보았을때 블랙홀이 저세상으로 가는 입구다라는 설정만큼이나 신선했다. 물론 베르베르의 그 지나친 상상력이 자기 발목을 잡을 때도 있다. 사랑의 검이니 위트의 방패니 하는 것을 가지고 천사와 영혼들이 싸울때는 이게 동화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상상력만큼은 사람을 놀라게 하는 부분이 있고 또 공감을 가게 하는 부분도 있다. 누구든지 한번쯤은 ‘저세상이 있을까’, ‘천사가 있을까’, ‘천사 위엔 또 뭐가 있을까’ 등을 생각해보지만 그 상상을 구체화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는 요즘도 신(god)위에는 도대체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모든 것이 존재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신도 존재 이유가 있을 것이고 또 그 신위에는 뭐가 있을까. 이런식으로 계속 생각을 해보면 도대체 세상은 어떻게 생겨난건지 알 수가 없다. 머리만 아프다.

오디션 – 읽으면서 영화로 만들면 좀 유치해 질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2000년에 영화화된 소설이라고 한다. 엄청난 반전이 있는 책이고 또 그 반전이 갑자기 튀어나오기 때문에 놀랐다. 소설의 내용은 둘째치고 무라카미류는 꽤 잡스런 것들을 많이 안다고 생각했다.

고흐가 왜 귀를 잘랐는지 아는가 – 확실히 무라카미류는 달변이지만 그의 어떤 책들은 읽다보면 정말 머리가 이상해진다. 이 책도 그런 책이다. ‘달콤한 악마~’책에서 밝혔듯이 류는 변태는 아니지만 SM행위 하는 걸 보는 것을 상당히 즐긴다고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처럼 그쪽 이야기를 자세하게 쓸 수는 없을 것이다. 머리가 이상해지는 책임에도 꽤 흥미있게 보긴 했지만 도대체 류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또 다시 류의 책에 손이 가는건 단순한 흥미 때문일까?

소설과 영화를 찾아가는 일본여행 – 이미 대부분 보았던 일본 소설, 영화, 만화등의 실제 무대를 찾아가는 테마 여행기. 정말 가보고 싶은 곳도 많고, 사진도 많이 볼 수 있어 좋았지만 책을 쓴 사람이 사진작가라 그런지 설명은 자세했지만 묘사나 감상은 약간 기대이하였다. 아무튼 이 책을 보면서 일본은 참 여러가지 문화를 가진 나라라는 걸 다시 느꼈다. 한류, 한류하지만 일본의 문화가 가진 그 기초의 견실함을 우리나라와 비교하기엔 아직은 힘들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땅이 넓은만큼 굉장한 자연환경도 많고 자신들의 문화에 대한 애착도 여느 나라 못지 않다. 이런 테마여행을 언젠가 한번 꼭 가보고 싶다.

박훈규 언더그라운드 여행기 – 여행은 언제나 설렌다. 마찬가지로 여행기도 설렌다. 고등학교를 때려치고 호주, 런던, 스코틀랜드를 맨몸으로 돌아다닌 박훈규씨의 여행기도 사람을 설레게한다. 여행은 도전이다.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찾아가는 것, 또 다른 생활 양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하지만 그들도 결국은 똑같다는 것을 깨닫는 것, 넓은 세계를 만나면서 자신의 마음속에도 더 넓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여행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박훈규의 그 용기도 부러웠지만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은 더 부러웠다. 컴퓨터를 잘한다, 수학을 잘한다 따위는 전혀 부럽지 않지만 음악이나 미술 또는 글을 잘 쓰는 것은 정말 부럽다. 자신이 상상하는 것을 표현하고 또 다른 사람과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축복이라고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느꼈다.

달콤한 악마가 내안으로 들어왔다 – 류의 요리와 여자에 관한 이야기다. 요리를 하나씩 소개하면서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식인데 솔직히 책을 읽어나가며 류가 굉장히 부러웠다. 직업상의 이유때문이겠지만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며 그나라의 최고의 음식들을 맛보고 또 다양한 여성들과 어울린다는 것은 보통사람들은 꿈도 꾸기 어렵다. 그런 내용을 류는 그저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고 있다. 그에게는 물론 당연한 일들일 것이다. 인간은 어쨌든 불평등하니까. 이 책에는 굉장히 맛있을 것 같은 음식들이 소개되고 있기에 책 읽는 내내 배고픔을 참아야만 했다. 상상력이란것 이럴땐 참 곤란하다.

배고픔의 자서전 –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에 이은 아멜리의 자전적 소설. ‘이토록~’도 그렇지만 이 소설도 끔찍하게 재미있다. 어릴때부터 단 것과 술, 그리고 물에 항상 배고픔을 느끼던 그녀에게 배고픔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까? ‘배고픔, 나는 이것을 존재 전체의 끔찍한 결핍, 옥죄는 공허함이라 생각한다. 유토피아적 충만함에 대한 갈망이라기보다는 그저 단순한 현실, 아무것도 없는데 뭔가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소망하는, 그런 현실에 대한 갈망이라고 말이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참 솔직하기도 하시다. 인간은 왜 항상 배고픈 것일까? 왜 항상 모자라고 왜 항상 바라는 것일까? 인간에게 배고픔은 블랙홀과 다름없는 존재 그 자체일까? 무언가와 소통하고 싶다는 열망, 알고 싶다는 열망 그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 무라카미류의 ‘달콤한 악마~’의 서평중에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자신의 육체를 개방해 다른것과 섞이는 것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배고픔이 인간을 살아가게 한다.

레인메이커 – 존그리샴의 명성은 예전부터 들어왔지만 그의 작품을 읽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예전에 친구가 영화 ‘레인메이커(멧데이먼이 주연인)’를 추천했는데 그 생각이 나서 빌려봤다. 한마디로 굉장한 소설이다. 책에 빨려 들어간다는 경우가 바로 이런 책을 보는 경우에 속한다. 2권짜리 책임에도 단편소설을 보는 것만큼 빠른 속도로 읽어나갔다. 스피디한 문체, 현실적인 주인공 설정이 마음에 들었고 주변인물에 대한 묘사도 맘에 들었다. 약간 아쉬운 건 마무리 부분이 약간 부실하다는 것이다. 드라마의 엔딩처럼 누구는 이렇고 누구는 이렇게 교통정리를 한꺼번에 다하고 마무리를 짓는데 약간은 실망했지만 그외의 모든 것에 만족한 소설. 존 그리샴에 한동안 빠질 것 같다.

노플랜 사차원 유럽여행 – 네이버에서의 추천에도 불구하고 책을 직접 보니 사진이 단 한장도 없는 여행기였기에 약간 불안했지만 왠만한 여행기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감상도 적당하고 무엇보다 작가의 말투가 너무 재미있었다. 유럽 가는 딸한테 칼 꼭 사오라고 강요하는 어머니나 유럽여행중 시도 때도 없이 코고는 이야기등 재미있는 이야기나 에피소드가 가득한 여행기. 사진으로만 잔뜩 도배하고 별 내용도 없는 여행기보다는 이런쪽이 훨씬 재밌다. 가보지 못한 유럽 책으로나마 봐야지 뭐 별 수 있나.

펠리컨 브리프 – 존그리샴의 초기작. 초반부가 좀 지루했고,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는 바람에 이름 기억하기가 힘들었다. 두명의 판사가 죽게 된 이유를 여대생 혼자 밝혀내는데도 그 잘난 FBI에서는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하는 건 좀 이해가 안갔다. 초기작인만큼 몇몇 부분은 논리적으로나 이성적으로 공감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볼 만 했다.

현태준 이우일의 도쿄 여행기 – 팔팔한 젊은이도 아닌 애까지 딸린 30대 남자 둘이 도쿄의 명소보다는 관광객이 많이 가지 않는 뒷골목이라든가, 벼룩시장이라든가, 장난감 가게를 주로 돌아다닌 이야기다. 전혀 장난감 안 좋아하게 생긴 두 남자가 조잡한 장난감에 열광하는 걸 보니 좀 웃긴다. 도쿄에서 술먹기라든가, 빠찡코하기 등등 기존의 여행기에서는 볼 수 없는 이야기들이 많아 색다른 여행기.

1월에 읽은 책

1월엔 대략 5권의 책을 읽었다.

월초에는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봤는데 물론 이 책을 처음 본 건 아니고 한 5번째쯤 읽은 것 같다. 맨 처음 읽은건 문학사상사의 ‘상실의 시대’였고, 그 뒤로 그 책을 한 4번정도는 읽은 것 같다. 그 뒤 김난주가 번역한 오래된 책을 구해 좀 읽어보았지만 사람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나와는 뭔가 코드가 맞지 않아 그만두었다. 그리고 이번에 구해 읽은 것은 ‘허호’역의 ‘노르웨이의 숲’이다. 번역자가 각각 다른 똑같은 책을 읽는 것을 시간낭비라고 생각해왔고 그렇기에 한번도 같은 책의 다른 번역을 읽어본 적이 없지만 ‘노르웨이의 숲’만은 여러 번역으로 읽는 게 하루키와 ‘와타나베’에 대한 예의일 것 같았다. 물론 원서로 읽는다면 가장 좋겠지만 일본어는 초급수준이며, 영문번역은 몇페이지 읽다 포기하고 말았다(이해는 갔지만 해석에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기에). 아무튼 ‘허호’역의 책은 읽기에 좋았다. ‘상실의 시대’와는 느낌상 다른 부분이 있었고, 번역도 진지한 듯 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같았다. 하루키의 문체는 그다지 많은 해석의 여지를 남기지는 않나 보다. 같은 구절에서 색다른 감정을 느끼긴 했지만 그건 책이 좋아서였지 번역이 색달랐기 때문은 아니었다.
열림원의 ‘노르웨이의 숲’을 소장하려고 아주대 근처서점과 온라인서점, 온라인 헌책방을 모두 뒤졌지만 구할 수 없었다. YES24에 문의한 결과로는 책이 절판되서 다시 들어올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한다. 지금은 문학사상사의 ‘상실의 시대’만이 팔리고 있다. 유유정의 번역도 물론 좋지만 열림원책의 표지가 더 맘에 들었고 문학사상사것처럼 엄청난 해설이 딸려있지 않은것도 좋았다. 처음 ‘상실의 시대’를 읽었을 때 엄청난 감명을 받긴 했지만 뒤의 해설을 읽을때는 머리가 아파져서 그만 두었다. 나쁜 해설은 아니었지만 어쩄든 머리가 아팠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상실의 시대’를 한권 구입해야 할 것 같다.

두번째로는 박완서의 ‘나목’. 예전에 읽었던 책과 워낙 분위기가 비슷했으므로 별로 할 말은 없다. ‘나목’은 괜찮았지만 뒤에 딸려 있던 단편소설은 좀 따분하기도 했다. 뒤의 글들이 지금의 현실과는 맞지 않거나, 아니면 아직 내가 이런 글들을 읽기에는 어린 것이 아닐까 한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은 영화로 먼저 봤고 역시 영화가 더 나은 느낌이다. 책도 좋긴 했지만 일단 내용이 너무 짧고, 그외엔 다른 단편소설이 포함되어 있는데, 조제빼곤 다 별로였다.

‘다자이오사무’의 인간실격은 ‘호밀밭파수꾼’이 생각나는 책이다. ‘호밀밭파수꾼’의 주인공보다 100배는 더 우울한 주인공이 나와 100배는 더 우울한 인생이야기를 한다. 수차례 자살시도했고 결국엔 30대의 나이로 자살에 성공한 ‘다자이오사무’의 자기반영적 소설이라고 한다. 감동을 느끼거나 할 책은 아니었지만 좀 더 그의 삶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하지만 도서관에서 검색해보니 다른 책이 없었다.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살 수 없듯이 그가 자살해야만 했던 이유는 너무 순수해 사회에 적응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인간실격’이라고 하지만 누가 ‘인간실격’인지는 어느 누구도 판단할 수 없다.

1월말쯤에 읽어던 책은 하루키의 ‘먼북소리’인데 하루키의 에세이는 보통 비슷비슷한 감동을 주었고, 그다지 큰 기대는 하지 않고 보았지만 생각외로 좋았다. 최근작 ‘해변의 카프카’나 ‘어둠의 저편’과는 다른 1980년대의 풋풋하던(?) 시절의 하루키의 글이라 그런지 그만의 감각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1980년대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노르웨이의 숲’과 ‘댄스댄스댄스’를 집필하던 시절의 풋풋하고 신선한 하루키를 만날 수 있는 책. 그와 함께 하는 유럽 여행은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