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엘료의 소설을 두 권째 읽고 있다. 처음이 그 유명한 연금술사였고 이번이 11분이다.
그의 소설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어른을 위한 동화’ 다.
연금술사가 그랬듯이 11분에서도 코엘료는 정성을 들여 하나하나 모든것을 확실히 설명해준다.
친절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이건 이렇다, 저건 저렇다, 내 생각은 이렇다, 저 사람 생각은 이럴것이다…. 하지만 내겐 이런 친절한 설명이 오히려 독자들의 상상력을 제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머릿말만 읽어보아도 이 소설의 결말을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고,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알 수 있다는건 소설의 약점이 될 수도 있다.
그의 소설은 재미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많은 교훈도 얻을 수 있지만 정형적이기도 하다.
“이 방식이 좋은거예요. 이렇게 살아야하죠.” 따위의 설명이 곁들여진 소설을 보고 조금이나마 지루함을 느낀다면 그건 내 자신이 동화를 읽기에는 너무 많이 자랐기 때문일까?
하지만 책 구성은 나무랄 데 없었다.
지금 한국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창녀의 생존권 문제를 생각하며 읽어보니 더 와 닿는 내용이었다.
인상깊은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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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의 제물일수도 있고, 자신의 보물을 찾아 떠난 모험가일수도 있다. 문제는, 내가 어떤 시선으로 새 삶을 바라볼 것인지에 달려있다.
나는 사랑했던 남자들을 잃었을 때 상처받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오늘, 나는 확신한다. 어느 누구도 타인을 소유할 수 없으므로 누가 누구를 잃을수는 없다는것을.
진정한 자유를 경험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소유하지 않은 채 가지는 것.
“당신은 아니스 칵테일밖에 보지 못하지만, 나는 그 너머까지 봐야 해요. 그 과일이 열린 나무, 그 나무가 맞서야 했던 폭풍우, 그 열매를 딴 손, 한 대륙에서 다른 대륙으로 건너가는 선박, 그 열매가 알코올과 접촉하기 전에 가지고 있던 색깔을 보죠. 언젠가 내가 그럴 수 있다면, 나는 그 모든걸 화폭에 담을 거예요. 하지만 그 그림을 보는 당신은 그저 흔하디흔한 아니스 칵테일 잔을 앞에 두고 있다고 생각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