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컨대 자신이 언젠가는 죽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오히려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의미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을까요? 정말 그렇잖아요? 언제까지고 늘 영원히 살 수 있다면 누가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겠어요. 그럴 필요가 있겠어요? 만일 가령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해도 말예요, ‘시간은 아직 충분히 있으니까. 언젠가 가까운 시일 내에 생각하면 되니까’ 하게 되지 않을까요?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죠. 우리들은 여기에서, 이 순간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요. 내일 오후 나는 트럭에 치여서 죽을지도 몰라요. 사흘 후 아침에 태엽 감는 새님은 우물 속에서 굶어 죽어 있을지도 몰라요. 그렇죠? 무엇이 일어날지 누구도 몰라요. 그러니까 우리들이 진화하기 위해서는 죽음이라는 것이 아무래도 필요한거예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죽음이라는 존재가 생생하고 거대할수록 우리들은 필사적으로 사물을 생각하게 되는 거죠”
주인공은 3년전쯤 삿포로의 스낵바에서 노래를 부르던 청년을 다시 보게 된다. 그때 그는 그렇게 말했다.
“자신의 고통은 자신밖에 모른다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정말로 그럴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령 누군가가 정말로 괴로워하는 광경을 눈앞에 보면서 우리들도 그 괴로움이나 고통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공감대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런 말을 한 청년에게 주인공은 분노를 느낀다. 자신은 아내와 전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었기때문이다.
주인공은 청년을 피가 나고 저항할 수 없을때까지 때린다.
그러나 그건 자기자신에게서 도망가는 방법일 뿐이었다.
주인공은 결론에 도달한다.
‘나는 도망갈 수 없으며 도망가서는 안된다. 그것이 내가 얻은 결론이었다. 설사 어디에 가더라도 그것은 반드시 나를 따라올것이다. 어디까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