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친구는 왕자님


제목부터 느끼하지 않은가? 정말 느끼하다.
스토리는 프린세스다이어리나 파리의 연인등 많은 여자들이 바라는 그것과 99% 일치한다. 다만 마지막에 약간의 반전(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이 존재하기에 파리의 연인과 더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다.
거기에 또라이 왕자가 여자때문에 개과천선한다는건 우리나라의 ‘평강공주’와도 비슷하다.

의대 지망생인 여주인공의 변덕은 죽끓듯 하여 이랬다 저랬다 하는데 선수고, 정체성을 찾으려 하는 모습은 너무나도 공감이 가지 않고 내용 전개가 어설프기 그지 없다.
만약 이런 여자와 사귄다면 싸대기 한대 때리고 헤어지자고 하는게 서로를 위해서 좋을 듯 하다.
설마 이런 영화를 보고 ‘아! 나의 왕자님은 어디 있을까’ 하는 여자가 있을지 궁금하다.

A Time For Drunken Horses

이 영화는 쿠르드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국가를 가지고 있지 않은 민족이 얼마나 비참한 생활을 하는지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지만 내 생각에 이 영화는 가지고 있지 못한 자의 설움을 이야기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아윱 가족의 생활은 비참 그 자체다. 부모님은 안계시고 ‘마디’는 병에 걸려 오늘 내일 하는 판이고, 그 마디때문에 아윱의 누나는 팔려가게 생겼다.
아윱은 그래서 돈을 벌어야 한다. 나귀에게 술을 한바가지 처먹여서 눈보라가 날리는 산을 넘어야 한다.
그가 그저 살기 위해 돈을 버는 건 아니다. 그는 누나를 사랑하고 동생을 사랑하기에 돈을 벌 수밖에 없다. 그들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외상으로 물건을 줄 정도로 본질적으로 순박하고, 몇마디 말로도 서로의 감정을 돌리지 않고 솔직하게 말할 줄 안다.

아윱이 외상으로 사온 보디빌더의 사진을 보고 있는 마디나, 수업시간에 비행기로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다고 써 있는 교과서를 읽는 학생이나 다 딴 세상의 이야기를 보고, 읽는듯한 표정들이다.
감독은 우리에게 말한다 ‘너희들은 그렇게 살고 있지만 이 아이들을 봐라… 왜 이들은 이렇게 살아야하지?’

지금 이순간에도 우리들은 스타벅스 커피를 홀짝이며 인터넷 온라인 게임을 즐기고 있다. 그런 우리가 그들을 본질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직접 겪지 않은 상황은 잘 이해할 수 없고, 환경에 따라 적응하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들과 완전히 다른 생활을 하고 있더라도 자책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치만… 왜 그들은 그런 환경에 있어야 하는걸까… 물론 안다. 몇 몇 사람들 때문이란거… 몇몇 윗사람들의 민족, 종교따위에 대한 충돌 때문에 대다수의 선량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거 안다.
그들은 거기 태어났다는 거 하나만으로 그런 힘든 생활을 하고 있는거다. 장기적으로 보아도 그들의 생활이 나아질 기미가 안보인다는 건 더 비참하다.

난 아버지의 어릴적 어려웠던 이야기를 들으면 참 싫었다. 그 세대를 겪어보지 않았던 나로써는 공감하기 어려웠던 탓이다. 이 영화도 그런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 도대체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 방관자를 넘어서 잔인한 느낌마저 드는 신을 탓할껀가?
해답을 내기에 쉽지 않은 이야기다. 높이를 알 수 없는 벽을 만난 듯 막막하다고 할 수도 있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눈물을 짜내는 영화라기보다는 이 세계 어딘가에 있는 또하나의 현실적인 벽을 가슴으로 느끼게 해주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