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시’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 中


1. “누님, 왜 우세요. 시가 안 써져서 우세요?”
시를 쓴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 거짓과 가식, 부조리로 가득 찬 세상에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다는 것은 힘들고 힘들다.

2. “시를 쓰는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시를 쓰려는 마음을 갖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아름답게 사는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아름답게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진정 어렵다.

3.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영화가 끝날때쯤 나오는 시를 들으며 울었다. 우리의 아름다운 순간도 언젠가는 우리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갑자기 서러워졌다.

4. 영화 ‘시’는 아름다움 자체보다는 아름답게 살고자 하는 자세에 대한 이야기다. 아름답게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때 누구든 시를 쓸 수 있다고 감독은 말하는 듯 하다. 난 과연 아름답게 살고자 노력하고 있을까. 부끄럽다.

5. 칸느가 ‘시’를 선택하는 것과 관계없이 이창동은 또 하나의 걸작을 지었다.

# 20100516 대전롯데시네마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 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래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이창동 ‘아네스의 노래’ 

12월에 본 영화

# 줄리앤줄리아(12.12) – 실화가 바탕. 메릴스트립의 연기가 정말 눈물나게 사랑스러웠다.

# 모범시민(12.13) – 재미는 있었다만 클라이드가 왜 감옥에 들어가는지 이해 안감. 그 정도의 재력과 머리라면 감옥에 안 가도 충분히 자기 하고 싶은대로 다 했을텐데. 엔딩이 해피하지 않아 약간 찝찝했다.

# 에반게리온 파(12.16) – 영상도, 음악도, 이야기도 계속 진보하고 있는 에바. 보는 내내 ‘이걸 극장에서 봐서 다행이야’라고 생각했다.

# 국가대표(12.16) –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의 소감은 ‘차라리 이걸 보느니 쿨러닝 한번 더 본다’. 억지 연출, 억지 애국심 강요, 어설픈 연기 등등 무엇하나 쿨러닝을 따라가는 부분이 없음. 살인의 추억에 나왔던 메뚜기소년은 살인의 추억상의 컨셉 그대로 왜 또 나온건지 도저히 이해가 안됐다. 그러고보니 한국에서 천만 넘은 영화 치고 정말 재밌게 본게 별로 없는 듯.

# the cove(12.26) – 돌고래 다큐. 우선 돌고래는 하루에 60Km 정도를 움직이며, 청각이 아주 예민한데 시끄러운 펌프가 돌아가는 좁은 수조에 쳐넣어놓고 돌고래쇼를 시키면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기에 돌고래의 먹이에는 위장약을 넣어준다고 한다. 또 돌고래는 의식적으로 숨을 쉬기 때문에 다음 숨을 쉬지 않는 것으로 자살할 수 있다고 한다(돌고래는 자의식이 있음). 자기 품안에서 돌고래가 자살하는 걸 경험했던 돌고래 조련사 릭 오배리는 현재 돌고래를 수족관에서 풀어주고 돌고래 학살을 막는데 힘쓰고 있다. 일본의 타이지 마을에서는 해마다 25,000마리 가량의 돌고래를 잡아 죽이는데, 학살방법이 야만적일 뿐 아니라 돌고래를 죽이는 이유 또한 웃기다. 돌고래가 너무 많은 물고기를 먹어서 어민들이 잡을 물고기가 없다는 것. 일본은 IWC에서 저개발국가를 매수해 돌고래 사냥을 계속하는 한편 안 팔리는 돌고래 고기를 고래고기로 둔갑시키거나 학교 급식으로 뿌리기까지 하는데 돌고래에는 엄청난 양의 수은이 들어있기 때문에 이 또한 문제가 된다(다큐에서 인터뷰한 일본 수산청 직원도 검사 결과 수은중독). 돌고래 잡이는 일본에서 오래전부터 계속되어온 문화의 일부이며, 우리도 개고기 먹는데 남탓할 수 있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건 문제의 차원이 다름. 개고기 먹고 중금속에 중독되는 사람은 없을 뿐더러 일본 사람들 대다수는 돌고래가 시중에 팔리고 있는지도 모름. 이 다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건 단순히 돌고래 잡이의 문제점이 아니라 인간인식의 변화촉구이다. 살아있는 모든 생물을 인간 마음대로 컨트롤하지 말고 존중해 줄 것. 또 국가적 차원에서 그런 노력을 할리 없으니 개개인이 나서야 한다는 것.

# 아바타(12.27) – 이 영화대로라면 2145년인데도 인간은 아직 the cove에서 다뤄지는 인간들보다 진보하지는 못한 듯. 아바타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 과학기술을 가진 인간들이 그저 자원을 얻기 위해서 사람처럼 생각하고 생활하는 타종족을 돌고래 죽이듯 죽이는걸 보니 갱제만 외치는 쥐박이같은 놈들이 미래에도 설치는 모양. 이야기는 너무 뻔해서 약간 지루했으나 3D 효과는 마치 내 앞에서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실감났다. 다만 3D영화라는게 아바타에서 처음 시도한 것도 아니고 예전에도 몇번 봐서 그런지 30분 지나니 2D처럼 익숙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