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난 어릴적부터 기독교를 좋아하지 않았다. 심심하면 집의 벨을 누르고 교회 오라고 하는 사람들도 싫었고, 일요일에 교회에 가면 알 수 없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것도 싫었다. 어쩌면 그에 대한 반감으로 불교에 대한 호감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불교는 심심하면 집으로 찾아오지도 않고, 또 절에 가도 그냥 앉아있다가 절만 몇 번 하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나는 무교인이지만 가끔 불교에 관한 서적을 읽을 때가 있다. 종교적인 관심보다는 순수한 가르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이 책은 미국에 불교를 전하고 있는 숭산스님의 제자 무량스님이 쓴 글이다. 무량스님은 예일대 재학중에 숭산스님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나는 제목처럼 ‘왜 사는가’에 대해 알고 싶어서 이 책을 골랐다. 사람들이 왜 사는지, 또 나는 왜 사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생각해도 답이 나오질 않았다. 그저 나이를 먹어가며 이것저것 현실적인 것들에 부딪히면서 점점 왜 사는지에 대해선 생각해보지 않게 되었다. 말하면 ‘자동적’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살 수는 없지 않은가. ‘태어났기 때문에 그냥 살다 죽을 뿐’이라는 핑계를 대기에는 내 삶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 이 책의 저자 무량스님은 ‘왜 사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직접 대답을 해주기 보다는 자신이 왜 ‘왜 사는가’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게 됐는지, 어떻게 스님이 되었는지, 또 어떻게 태고사를 지었는지 이야기하며 ‘왜 사는가’에 대해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다. 글을 잘 쓴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솔직, 담백한 글은 읽기에도 좋았고, 글솜씨를 떠나 그가 생각하는 사람의 삶,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진실한 자세는 뭔가 생각하게 하는 점이 있었다. ‘진리란 어쩌고 저쩌고 하니 너는 이렇게 살아라’라고 말하기보다는 화두를 던져줌으로써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법, 그것이 불교의 방식이다. 무량스님은 지금도 10년 넘게 태고사라는 절을 짓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건축물을 만드는 것이 아닌 자기 수행이다. 또한 그것은 그 절을 이용할 다른 사람과 후세를 위한 헌신이다. ‘오직 모를 뿐’이라는 자세로 ‘다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