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생각나는 옛 기억의 조각이 있다.
왜 있잖은가… 아주 옛날 기억이라 그 기억의 whole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이상하게도 하나의 이미지만은 언제라도 뚜렷하게 생각할 수 있는 그런 기억들…
그런 기억들이란 이상하게도 내가 꼭 기억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들과는 거리가 먼것들이고, 그 당시 아주 인상깊었다고 생각하는 그런 기억이 아닌 경우도 많다.
기억의 mechanism이 어떤지는 전혀 알 수가 없으므로 왜 이따위 기억들이 내 머릿속에 뚜렷한 하나의 점으로 남아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쨋든 그것은 내 기억이다.
어린 시절 잠깐 보이스카웃이란걸 했었다. 아마 초등학교 3학년쯤부터 6학년쯤까지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내가 보이스카웃을 했던 이유는 뭐 그당시 초등학생들은 대부분 그랬곘지만 단순하게도 보이스카웃 제복이 멋졌기 때문이다. 지금 보면 상당히 촌스러운 복장이지만 그 당시에 보이스카웃 제복은 아람단과 해양소년단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독보적인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고 거기에 많은 코흘리개 소년들은 빠져들었던 것이다.
각설하고 보이스카웃에서는 가끔 수련회 비슷한 것을 갔었는데 거기선 형식적인 게임들을 많이 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억은 그 게임중 하나에 대한 기억이다.
게임은 주어진 과자를 빨리 먹고 휘파람을 부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었는데 그 당시 난 휘파람을 불지 몰랐다. 당황한 나는 물었다. “휘파람 못불면 어떡해요?”
게임 진행자인 선생님은 대답했다. “지는거지”
그렇다. 단순하게도 휘파람을 불지못하면 게임에서 지는거였다.
게임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나는 지는걸로 결정이 나 있었던 것이다. 이미 지는 걸로 결정이 나 있었지만 그 당시 난 나름대로 열심히 과자를 먹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의 기억은 여기까지다. 그 앞도 뒤도 생각나지 않으며 내 기억 속의 이미지는 딱 여기까지다.
그 시절 난 어렸음에도 이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었나보다. 그것이 어떤 ‘작지만’ 확실한 분노로 자리잡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살아가면서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끝이 정해져있는 이야기들을 자주 본다. 그런것들을 보면서 나는 분노하기보다 허탈해 하는데 더 익숙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이미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만들어진 벽을 느끼면서 좌절하는데 익숙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살다보면 – 물론 내가 아는건 빙산의 일각이겠지만 – 내가 살고 있는 사회의 시스템에 그런 벽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평등’이란 말은 그저 말로써 존재하는 가상의 개념일뿐이지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