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너, 문득 떠나고 싶을 때 있지?


마른 코딱지 같은 생활 따윈 눈 딱 감고 떼어내고 말이야


비로소 여행이란,


인생의 쓴맛 본 자들이 떠나는 것이니까


세상이 우리를 내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 스스로 세상을 한번쯤 내동댕이쳐보는 거야


오른쪽 옆구리에 변산 앞바다를 끼고 모항에 가는 거야


 


 


부안읍에서 버스로 삼십분 분쯤 달리면


객짓밥 먹다가 석삼 년 만에 제 집에 드는 한량처럼


거드럭거리는 바다가 보일 거야


먼 데서 오신 것 같은데 통성명이나 하자고,


조용하고 깨끗한 방도 있다고,


바다는 너의 옷자락을 잡고 놓아주지 않을지도 모르지


그러면 대수롭지 않은 듯 한마디 던지면 돼


모항에 가는 길이라고 말이야


모항을 아는 것은


변산의 똥구멍까지 속속들이 다 안다는 뜻이거든


 


 


모항 가는 길은 우리들 생이 그래왔듯이


구불구불하지, 이 길은 말하자면


좌편향과 우편향을 극복하는 길이기도 한데


이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드는 싸움에 나섰다가 지친 너는,


너는 비록 지쳤으나


승리하지 못했으나 그러나, 지지는 않았지


저 잘난 세상쯤이야 수평선 위에 하늘 한 폭으로 걸어두고


가는 길에 변산 해수욕장이나 채석강 쪽에서 잠시


바람 속에 마음을 말려도 좋을 거야


그러나 지체하지는 말아야 해


모항에 도착하기 전에 풍경에 취하는 것은


그야말로 촌스러우니까


조금만 더 가면 훌륭한 게 나올 거라는


믿기 싫지만, 그래도 던져버릴 수 없는 희망이


여기까지 우리를 데리고 온 것처럼


모항도 그렇게 가는 거야


 


 


모항에 도착하면


바다를 껴안고 하룻밤 잘 수 있을 거야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 너는 물어오겠지


아니, 몸에다 마음을 비벼넣어 섞는 그런 것을


꼭 누가 시시콜콜 가르쳐줘야 아나?


걱정하지 마, 모항이 보이는 길 위에 서기만 하면


이미 모항이 네 몸 속에 들어와 있을 테니까


 


 


 


 


2012.12.19.


 


3번의 티비토론을 보고, 찬조연설을 봤다. 이번에야 말로 승리를 예감했다.


하지만 맘 한구석을 불편하게 했던 불안한 예감은 어김없이 들어맞았다.


 


‘노인이 전쟁을 결정하고 젊은이가 전쟁터에서 죽는다’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자들은 꼭 그에 대한 댓가를 치뤄야 한다.


하지만 이번 대선을 거치며 생각한 민주주의의 맹점은 반성하는 자들도 같이 댓가를 치루게 된다는 것이다.


어찌됐든 5년 더 악몽과 같은 이 곳에서 버텨야 한다.


잠시나마 희망을 갖게 해주신 문재인의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