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2 / 홍콩

잠에서 깬지 얼마되지 않아 비행기가 홍콩공항에 내려앉는다. 스탑오버한 홍콩에서의 일정은 하루.


홍콩에 도착하니 새벽이다. 날씨가 별로다. 습도도 높다.


새벽이라 공항도 썰렁하다. 여기서 홍콩여행시 필수품이라는 옥토퍼스카드를 살까 했으나 겨우 하루 여행하는데 그냥 다니자는 생각에 안 샀다. 결론적으로 우린 홍콩 여행을 하나도 못했기에 살 필요가 없긴 했다.


침사추이로 가는 cityflyer를 탔다. 헐 영국에서도 못 타본 2층버스를 홍콩 와서 타보는구나.


버스는 달리고 달려 침사추이에 도착. 막상 버스에서 내리니 건물이 많아서 게스트하우스를 어떻게 찾아갈지 막막했다. 더군다나 하늘에선 비까지 떨어지기 시작. 지나가던 아줌마에게 미라도맨션이 어디냐고 물으니 마치 벌레 쳐다보듯 우리를 쳐다보며 귀찮다는 손짓을 하며 가버렸다. 2층버스를 탈때까지만 해도 못 느꼈는데 여기서 정말 확실히 ‘아 여긴 아시아구나…’ 라고 느꼈다. 역시 아시아는 다이나믹해. 유럽에선 길 물어보는게 당연했는데 홍콩 와서 또 소심해져 버렸다.

얼마 걷지 않아 미라도맨션 발견. 여긴 공각기동대에서나 보던 홍콩의 전형적인 모습. 알록달록한 수많은 간판이 걸려있고 주상복합처럼 보이는 지저분하고 커다란 건물에는 창문이 빽빽하게 달려있었다. 길거리엔 중동사람이 많았는데 그들은 우릴 보고 하나같이 ‘명품 시계 싸요’를 한국어로 외쳤다. 얼마나 많은 한국사람들이 여기서 짝퉁을 사가는지 알만 했다.

예약해둔 애플하우스에 도착. 허름한 맨션과 달리 게스트하우스는 깔끔했다. 조선족 아주머니분이 지도 한장을 주며 홍콩에선 여기 여기를 많이 간다고 설명해주는데 지금 배가 안 다녀서 못 간단다. -_- 홍콩엔 태풍이 오면 배고 버스고 안 다닌단다. 관광은 깔끔하게 포기하고 동네 근처 구경이나 하러 나갔다.


태풍때문에 차도 별로 없고 사람도 별로 없다.


걷다가 애프터눈 티가 유명하다는 페닌슐라 호텔 발견.


영국의 영향으로 횡단보도에는 look left가 적혀 있다.


여기 야경이 그렇게 멋지다는데 곧 태풍 올꺼라 오늘은 야경이고 뭐고 없다고 함. 포기하고 쇼핑몰이나 가보자 했으나 근처에 있던 쇼핑몰은 태풍때문에 닫아버렸다. 좌절해서 저녁이나 먹자고 했지만 가게도 대부분 닫았다. 홍콩사람들 꽤 먹고 살만한가 보다.


정처없이 걷다보니 먹을걸 팔것 같은 골목 발견. 맛집이고 뭐고 혐오음식만 아니면 먹기로 하고 걷다보니 먹을 수 있을것 같은 음식을 파는곳이 있었다. 들어가서 볶음밥처럼 보이는 것과 면음식을 시키고 홍콩의 명물이라는 에그타르트를 시켰다. 에그타르트는 정말 맛있어서 한번 더 시켜 먹었지만 볶음밥처럼 보이는 것은 억지로 먹었다.


저녁먹고 나니 비가 많이 와서 그냥 숙소로 돌아왔다. 편의점에서 이런걸 팔길래 사 와봤는데 맛은… ‘이건 뭔가요?’


샤워하고 나니 할게 없어서 NDSL이나 두들김.


숙소에서 바라본 홍콩의 건물들. 외관의 더러움이 마치 100년도 더 된 건물같다. 홍콩은 건물을 깨끗히 유지해야한다는 개념은 없는건지 아니면 저 더러움도 도시의 한부분으로 인정하는건지 알 수 없었다.


비바람이 점점 거세진다. 나가는건 포기하고 NDSL이나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가 방문을 노크한다. 열어보니 웬 여성분. 자기들도 태풍때문에 못 나가는데 같이 맥주나 먹잔다. 나는 다 귀찮았지만 친구놈이 먹자고 해서 나가보니 사람이 꽤 많았다. 우리방을 노크하신 분은 여자 둘이서 인도를 갔다가 홍콩에 들렀다는데 둘다 교사였다. 그중 한명은 대전에서 근무한단다. 다른 그룹은 남자 셋, 여자 둘이었는데 남자 한명은 직장인, 나머지는 대학생이었다. 그중 여자 한명은 학교가 우리집에서 10분거리인 한남대란다. 이런 우연이… 아무튼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는데 분위기가 꽤 좋았다. 맥주 몇잔 마시고 얘기 좀 하다가 잤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있는데 둘이 온 여자분 중 한명인 누나가 배가 너무 아프다고 비행기 캔슬 좀 해달란다. 그래서 케세이퍼시픽에 전화를 해보니 절대 전화를 안 받는다. 태풍때문에 비행기가 뜨지 못해 공항도 난리가 난것 같았다. 도저히 캔슬이 불가능할것 같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같은 비행기였기 때문에 겨우 데리고 나왔다.


비는 어제보단 조금씩 떨어지지만 여전히 날씨가 안 좋았다.


홍콩에 도착했을때 탔던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 공항은 비행기가 뜨지 못해 아수라장.


비행기를 타려고 기다리는 사람들. 공항에선 언제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이야기 따윈 해주지 않아서 그냥 서 있었다. 홍콩은 다시 오지 말라는 소리인가…


공항에서 몇시간동안 죽치고 있는데 드디어 비행기 타라길래 공항 버스를 타고 비행기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것보단 홍콩을 떠나게 되서 더 기분이 좋았다. 떠난다니까 홍콩 하늘도 다시 맑아졌다. 잊지않겠다. 홍콩


우리가 탔던 자리. 다리를 쭈욱 뻗을 수 있고, 비행기가 이륙하거나 착륙할땐 앞에 예쁜 캐빈크루가 같이 앉아 있어서 좋았다.


바로 앞에 화장실이 있었던 것만 빼고.


이 자리는 앞좌석이 없으니 개인용 모니터도 이런 식. 이거 왠지 스타트랙 엔터프라이즈호라도 탄 느낌. 기내식은 만두를 줬는데 지금껏 먹었던 기내식중엔 가장 먹을만 했다.


한국에 도착. 원래 예정 도착시간은 8시쯤이었는데 연착때문에 1시가 넘어있었다. 캐세이퍼시픽은 이렇게 우리를 공항에 떨궈놓고 그냥 가버렸다.


당연히 공항엔 사람도 없고, 돌아갈 버스도 없었다. 그냥 첫버스가 올때까지 이렇게 밤을 새야하는 것이다. 공항을 어슬렁거리다가 야구를 보고, NDSL로 와이파이를 통해 친구와 혼두라 삼매경에 빠져있다 보니 어느덧 새벽.


대전으로 향하는 첫버스를 타자마자 문자 그대로 ‘기절’해 있었더니 대전에 도착했다. 도착한 대전의 하늘은 무척이나 푸르고, 날씨는 로마나 홍콩과는 비교할 수 없이 선선했다. 나는 여기가 이렇게 멋진 곳이었나 싶어 새삼 감탄했다.

나의 첫 유럽 여행은 이렇게 끝났다. 1년도 더 지난 지금에서야 여행기를 마치다 보니 유럽을 다녀왔다는 실감이 나질 않는다. 기억속의 유럽 여행은 이제는 경험하지 못한 역사책을 읽는것처럼 낯설게 느껴진다. 유럽 여행을 다녀와서 나는 두살을 더 먹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