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가방

“선생님”하고 나는 불러 보았다.
“왜요, 쓰키코 상?”
“선생님, 사랑해요.”
“나도 쓰키코 상을 사랑해요.”
진지하게 주고받았다. 우리는 언제나 진지했다. 장난을 치고 있을 때조차 진지했다.
그러고 보면 다랑어도 진지하다. 가다랭이도 진지하고, 살아 있는 것들은 대부분 진지한 것이다.

강풀의 순정만화와 영화 ‘lost in translation’의 느낌이 나는 소설이다.

남자는 나이가 많고 여자도 노처녀인 축에 끼며 둘다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
세대를 뛰어넘었기에 서로에게서 조건을 계산해보기전에 순수하고 진지한 사랑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나이와 선생과 제자라는 인연으로 인해 서로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이에는 선생의 완고한듯한 자세와 제자의 소녀같은 수줍음도 한몫하고 있다.

제자는 다가가려 하지만 선생님과 그녀 사이에 공기로 된 벽이 있는 것 같다고 느낀다.

그녀에게 선생님은 연정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경외의 대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녀는 솔직하다. 비록 표현이 느리긴 하지만 솔직하다.
기쁘면 기쁘다고 할 줄 알고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할 줄 안다.
이런 솔직함이 말그대로 ‘선생님’같은 선생님의 마음을 이끈다.
그런 그녀에게 ‘선생님’은 진지하게 대한다. 선생님이 학생을 대하는 진지함과는 또다른 진지함으로…

‘신호가 여섯 번 울리고 나서 선생님이 나왔다. 나왔다,고는 하지만 침묵한 채였다.
최초의 한 십초 정도는 선생님은 침묵하고 있었다.
목소리가 가 닿을 때까지 미묘한 엇갈림이 있어서,라는 이유로 선생님은 핸드폰을 싫어했다.’

핸드폰에서 사람과 사람간에 목소리가 닿을때까지는 짧다고는 하지만 분명 엇갈림은 있다.
선생님은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쩌면 고리타분한 성격이라 할 수도 있지만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기계자체에 엇갈림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그런 진지한 자세가 사람사이에선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사이에 진지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 지고 있기에 그들은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사랑하지만 서로 사랑한다는것만으로 모든 것이 영원할 수는 없다.
어떻게든 장애가 있을 수 밖에… 그래서 사랑이란것이 아무리 영원하다고 믿고 싶더라도 그것은 엔딩을 알고 있는 이야기일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선생님은 그녀에게 가방을 남겼다. 보통 선생님에게 가방이 소중한 것이라는 건 말안해도 당연하다.
하물며 쓴 전지조차 버리지 못하고 살아온 선생님에게 ‘가방’이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소중할 것이다.
그런 가방을 그는 왜 그녀에게 남겼을까…

‘현재는 과거로 흘러 들어간다’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고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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