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의 핀볼에 대한 짧은 감상
세계의 끝과 같은 곳에 있는 출구가 없을것 같은 하나의 창고, 그리고 그 안에서 그는 수많은 핀볼기계들을 만난다.
소설에서 가장 압권인 장면이다. 일흔여덟대의 죽음을 갑자기 접하게 되었을때 그는 도대체 얼마나 당황했을까…
그는 스리플리퍼스페이스쉽을 나오코만큼이나 다시 찾고 싶어했지만 이내 그곳에서 만난 일흔여덟대의 기계앞에서 죽음과 그로 인한 공포를 느낀다. 그는 수많은 핀볼기계 앞에서 절망한다.
인생이란 그런거야… 돌고 돌다가 어쩌다 아주가끔 핀볼이 마지막 플리퍼의 사이를 마치 농구의 클린슛처럼 깔끔하게 지나면 게임이 오버되듯 그런게 인생이야.
우리는 살기위해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플리퍼를 당기지만 인생에도 시작과 끝은 있는거야…
그는 스리플리퍼스페이스쉽을 ‘그녀’라 부른다. 그따위 기계를 그녀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그로부터 끝없는 상실감과 함께 고독감을 느낀다.
기계는 그냥 기계일뿐이다. 그런 기계를 그녀로 부를정도의 사회를 만들어낸건 과연 누구인가…씁쓸하다.
처음 이소설을 읽기 시작했을때 왜 주인공이나 쥐 모두 핀볼에 집착하는걸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그들은 삶이, 흘러가는 시간의 허무함이 슬펐던 것이다.
핀볼은 시작과 끝이 명료하다. 인생이란 핀볼이다.
삶은 돌고 돈다. 그리고 그 끝은 있을듯 없을 듯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누구나 살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모든것의 결말은 똑같고 결국은 허무함만이 남는거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쥐는 말한다.
“나는 잠자코 고분을 바라보면서 수면을 가르는 바람소리에 귀를 귀울였어. 그때 내가 느낀 기분을 도저히 말로는 표현할 수 없어. 아니, 기분 같은 게 아니었다구. 마치 뭔가에 푹 감싸인듯한 감각이었어. 그러니까 매미나 개구리, 거미나 바람, 모든 게 하나가 되어 우주를 흘러가는 거지.”
‘1973년의 핀볼’에서의 쥐의 일상을 보자.
쥐는 조용한 오후 시간을 등나무 의자 위에서 보냈다. 멍하니 눈을 감고 있으면 완만한 물의 흐름처럼 시간이 그의 몸을 꿰뚫고 빠져 나가는 걸 느낄수 있었다. 그리고 몇 시간씩 며칠씩 몇주일씩 쥐는 그런 식으로 시간을 보냈다.
쥐는 바람의 노래를 들었다고는 하지만 바람의 본질단위까지 내려가본다면 바람은 절대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바람이란 그저 잠시 나의 곁에 왔다가 알수 없는 어딘가로 흘러가버리기 마련이다. 거기서 느낄 수 있는건 끝없는 허무함뿐이다. 그렇게 쥐는 썪어간다
. 그는 자신이 썪어가는것을 느끼지만, 또 어딘가로 떠난다고 해도 여전히 썪어갈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자체가 견딜 수 없어 어딘가로 떠나버린다.
하지만 핀볼에 출구따위란 없듯이 인생에도 출구란 없다. 그걸 그도 알고 있다. 그걸 알고도 그는 끝없이 침몰되어 갈 뿐이다.
아파트의 싱크대 밑에 쥐덫을 놨던 적이 있다. 미끼로는 껌을 썼다.
온 방안을 뒤진 끝에 먹을 거라고 부를 수 있는 건 껌말고는 찾을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겨울 코트 주머니에서 극장 입장권 반 조각과 함께 껌을 찾아냈다.
사흘째 되는 날 아침에 작은 쥐가 그 덫에 걸려 있었다.
런던의 면세점에 쌓여 있던 캐시미어 스웨터 같은 색깔의 아직은 어린 쥐였다.
사람으로 치면 열다섯이나 열여섯 정도일 것이다. 안타까운 나이다.
껌 한 조각이 발 밑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잡기는 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뒷발을 덫에 끼인 채 쥐는 나흘째 되는 날 아침에 죽어 있었다. 그 쥐의 모습은 나에게 하나의 교훈을 남겨 주었다.
모든 사물에는 반드시 입구와 출구가 있어야 한다. 그냥 그렇다는 얘기다.
모든것에는 입구와 출구,시작과 끝이 있어야 된다고 그는 믿는다.
인생은 허무하지만 그로 인해 인생은 어쩌면 아름답다. 어쩌면 그가 수명을 다한 배전반에게 장례식을 치러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루키의 처녀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더불어 ‘1973년의 핀볼’은 각각의 단어나 문장이 가지는 의미가 매우 함축적이면서도 인간의 내면이나 사물에 대한 묘사는 가끔씩 놀랄정도로 자세히 묘사한다.
언제나 그는 알듯말듯하게 책의 제목을 정하지만 그 제목안에는 모든 주제가 함축되어 있으며 이는 가장 최근작 ‘해변의 카프카’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어쨌든 바람의 노래를 들어보자. 그리고 핀볼도 즐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