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위스에서의 둘째날. 오늘은 피르스트(first)를 가기로 했다. 피르스트는 하늘 아래 첫 마을이라는 뜻. 하늘 아래 첫 마을인지는 모르겠으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연이 정말 경이롭다고 느끼긴 했다. 이 날은 스위스에서 있었던 날 중에 날씨가 가장 좋았다. 사실 이날 빼고는 날씨가 다 안 좋았다.
피르스트로 올라가는 곤돌라를 타기 위해 그린델발트 중심가(?)로 내려왔다. 어제와 달리 날씨가 정말 좋았다. 온도도 적당했고(살짝 서늘했다), 어제 푹 쉰덕에 컨디션은 최상이었다. 그런데 곤돌라 스테이션에 가니 유레일패스가 있으면 할인이 된다고 한다. ‘우리 유레일패스 안가져왔지?’ ‘응’ ‘돌아가자’
여기까지 오는데만도 미친듯이 걸어왔는데 우린 두말없이 호스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우린 스위스프랑을 너무 조금 환전해왔었고, 어제 레스토랑에서 돈을 너무 많이 써서 한푼이 아쉬웠다.

저기를 다시 올라가야된다. 다행히 오늘은 캐리어를 들고 있진 않았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호스텔이다. 스위스에는 호스텔도 산에 있다. 아니 딱히 호스텔이라고 산에 있진 않지만 우리가 고른 저렴한 호스텔은 산에 있었다.

호스텔에 돌아와보니 사람들은 이미 다 나가고 아무도 없다. 주인 부부는 청소를 하고 있었다.

알고보니 곤돌라를 타러 가는 길은 두가지 길이 있었다. 이번엔 다른 길로 갔다. 이쪽 길이 훨씬 느긋하고 경치도 좋았다.

전형적인 스위스의 시골마을같았다. 농장일을 하고 있던 사람들은 지나가는 우릴 보고 웃으며 인사를 해줬다. 여유가 느껴졌다.

딱히 산에 오르지 않아도, 길을 걷는것만으로도 정말로 행복해지는 그런 길이 쭉 이어져 있었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저쪽에서 뛰어올것만 같다.

길을 따라 내려갔다.

BMW, 푸조, 벤츠…. ㅎㄷㄷ



곤돌라를 탔다. 타고 보니… 이건 연인용이다. 꽤 큰 곤돌라에 친구와 나 둘만 탔다. 거기다 꽤 오래 올라간다.

곤돌라의 창을 열고 바라보는 풍경.

꽤 많이 올라왔기에 이제 거의 다 올라왔나 싶었는데 아직 절반도 안 올라온거였다.

곤돌라에서 바라보는 그린델발트는 그림 그 자체.

한번에 못 올라가기 때문에 곤돌라를 갈아타야 된다.

드디어 종점에 도착.

너무 높아서 산이 구름 사이에 있다. 아니 그런데 이렇게 높은 곳에 소들이… 여기선 소가 기념촬영 포즈도 취해준다.

호수가 있다는 곳까지 올라가 보기로 했다. 꽤 멀다.

피르스트에는 소가 정말 많았다. 나는 원래 소란 느릿느릿 걸어다니는 동물인지 알았는데 말처럼 뛰어다니기도 한다는걸 여기서 처음 알았다. 송아지가 아닌 소들이 정말 미친듯이 뛰어다니길래 좀 무서웠다. 하지만 이에 굴할 내가 아니다. 우리는 맨손으로 소를 때려잡으시던 최배달의 후손 아닌가. 동물은 눈빛싸움이라고 알고 있었기에 소를 계속 노려보았으나 소도 나를 계속 노려본다. 좀 더 노려보면 뿔로 들이받을 기세다. 나는 가던 길을 계속 가기로 했다.

드디어 Bachalpsee 도착. 백두산천지도 한라산 백록담도 안 가본 나에게 높은 산에 있는 호수는 감동 그 자체.

호수 옆 대피소같은 곳 옆에 서 있던 표지판.

웬 젖은 개가 열심히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이렇게 높은데까지 와서 풀뜯느라고 니가 고생이 참 많다.

호수 위로도 길이 나 있기에 더 올라가 볼까 하다가 시간이 늦을꺼 같아 내려가기로 했다.

내려올때는 하이킹으로. 경치가 그야말로 쩔었다.

2262M란다. 태어나서 올라와본 가장 높은 산이었다. 고산병에 걸려 죽을뻔했다…… 는 뻥이고 정말 상쾌했다.

단숨에 마을까지 뛰어갈 수 있을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마을은 너무 멀었다[먼산].

왠지 파라마운트 로고같다. 파라마운트 로고는 스위스에 있는 마테호른봉이라고 한다.

한참 내려오고 있는데 이 부근에서 웬 일본 할머니가 오카리나를 꺼내더니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박수를 쳐주진 못했지만 정말 멋졌다.

일부러 길이 아닌 풀밭으로 걸어다녔는데 피르스트에는 소똥이 정말 많았다.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소똥은 처음 봤다.

마시면 왠지 HP가 회복될 것 같지만 보통사람이라면 이런건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못마신다.

또 한참 내려가다 보니 아저씨가 소를 몰고 간다. 소들이 풀 다 뜯고 퇴근하는 시간인가 보다. 저 아저씨 소몰이답지 않게 귀걸이까지 하시고 간지가 쪄셨다.

소몰이개가 빨리 가라고 뒤에서 계속 짖었다. 하지만 소들은 왠지 쌩까는 분위기.

소들이 너무 느긋하게 걷고 또 대변까지 수시로 보는 바람에 도저히 뒤에서 걸어갈 수 없었다. 나를 모시던 돌쇠가 ‘길을 비켜라’라고 외치니 소들이 존경의 눈빛을 보이며 한쪽으로 비켜섰다.

그리고 다시 길이 열렸다. 나는 흡족했다.

아줌마가 어린애를 데리고 하이킹을 하고 있었다.

슬슬 마을이 보인다.

곤돌라가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곤돌라가 올라오던지 말던지 닥치고 걷는다.

닥치고 걷다가 경치 감상도 좀 해준다.

MB가 보면 ‘거봐라. 자연환경 보존에 앞장선다는 스위스도 개발하지 않나. 무조건 파야된다. 강으로는 부족하니 산도 좀 파자.’ 라며 좋아했을 듯. MB는 닥치고 파고 나는 닥치고 걷는다.

이 차를 보고 왠지 브로크백마운틴이 생각났다. 히스레저씨 좋은 곳으로 갔기를.

닥치고 걸었는데도 끝이 안 보인다. 몇시간짼데;;;

설마 여기서 미끄럼틀 타고 놀으라고?

드디어 마을로 다 내려왔다.

마을에서는 고양이 한마리가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개와 고양이가 풀을 뜯는걸 본 이상한 날이었다.

숙소로 돌아왔다. 주인아저씨가 추천해 준 그린델발트산 맥주와 하이네켄을 따서 비치의자에 누워 마시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옆집에서는 누군가가 스위스호른을 불고 있었다. 술맛 나게 풍악을 울려주는건 좋았지만 참 못 불렀다.
그린델발트에서의 마지막 밤은 고요하고 고요했다.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는데도 알 수 없는 상실감을 느꼈다. 그린델발트를 떠나기 싫었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