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잊혀져서 도저히 기억나지 않는것들이 갑자기 마치 신의 계시라도 내려진것처럼 기억날때가 있다.
그럴땐 나 자신도 속으로 놀라고 만다. ‘신은 있는건가?’ 하는 근원적인 생각으로까지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
그건 그렇다 치고 그 기억이란것은 나 자신에게는 매우 애매한 기억인 경우가 많다.
즉, 그 당시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기억들 말이다.
말하자면 좋아했던 기억이 있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의 보통때는 몇년을 주기로 아무리 노력을 해봐도 기억나지 않다가
갑자기 이름이 기억나는 것이다.
이럴때면 매우 당황하게 된다. ‘도대체 지금 기억나서 어쩌란 말인가? 도대체 신이란 사람은 이미 몇년전에 잊혀졌어야 할 기억을 지금 나에게 던져줘서 도대체 어떤 output을 나에게서 바라는건가?’
아무튼 기억난걸 컴퓨터메모리상의 기억처럼 단순히 지워버릴수는 없는것이고 내가 해볼 수 있는 initial단계의 시도는 해본다.
그렇지만 이런 경우의 일은 대부분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이미 예전에 찾을 수 없게 되어버린 출구를 아니 어쩌면 이미 없었을지도 모를 출구를 아주 오랜시간이 지나고 다시 찾으려 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다.
난 이런 경우를 ‘삽질’하는 상황이라 생각한다. 출구란 없다.
나의 의도때문이건 아니면 환경적인 요인때문이건 그 ‘출구’란건 이미 없어져 버린거다.
이럴때면 그저 체념하는 수 밖에 없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안에서의 한계에 다다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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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sh
보통 사람들은 자기가 접하는 문화나 사람을 포함한 일종의 사물을 접할때 무척 자기 맘에 들지 않는다거나 자기 한계내에서의 객관적인 생각으로 생각했을 때 좋지 않다고 생각할 경우에 그것을 ‘쓰레기’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것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나다.
나는 위에서 말한 것들중 기본적으로 내 맘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할 경우에 아무 생각없이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으며 입밖으로 자주 내뱉기도 한다.
영화를 보면서 정말 아니다고 생각할때 ‘이건 쓰레기영화군’
음악을 들으며 소음이라 생각할때 ‘이건 쓰레기음악이군’
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것이다.
물론 무척 나쁜 습관이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누군가에게 해를 끼칠 염려가 없거나 또는 그것이 창조를 위한 문화적 활동의 일종인 경우 그것은 그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개개인의 능력에 한계가 있거나 여러가지 환경의 영향으로 그 결과물에는 차이가 있기마련이지만 문화적 창조 행위는 누구도 뭐라 할 수는 없는 그런 가치가 있는것이다.
창조행위라는건 인간의 행위중에선 그나마 가장 바람직한 행위중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쓰레기’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반대로 생각해 자신의 행위로 인한 창조물이 누군가에게 쓰레기라고 불린다면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우리는 결과물을 보고 모든것을 판단하려 하는 경우가 많지만 결과보다 중요한건 과정이라고 누구나 말하지 않는가?
과정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결과만으로 모든것을 판단한다면 ‘나는 보이는것만 믿는다’라고 하는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우리가 경계해야할것은 순수한 창조행위가 아닌 ‘상업적 이용’등 특수 목적을 위해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다.
그것에 앞서 무엇에든 나름대로의 ‘가치’는 존재한다고 인식하는게 중요한것 같다.
그렇다고는 해도… 앞으로도 ‘쓰레기’라는 말을 안쓴다고 보장할 수는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