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에 듣는 음악


휘성 4집 예전의 신선함은 이젠 없지만 여전히 사람을 외롭게 하는 음악. 곡들의 분위기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은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가을이라 괜찮다.

/05 얼마전에 일본에서 개봉한 ‘별이 된 소년’을 비롯해 ‘마지막황제’, ‘팜므파탈’, ‘the sheltering sky’의 수록곡등 영화 음악도 많이 수록되어 있고, energy flow와 aqua, a flower is not a flower등의 듣기 편한 음악도 많아 역시 /04를 잇는 이지리스닝의 연속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가장 인상 깊은 곡은 happyend.

Swing Girls OST 영화에서 흘러나오던 재즈는 물론 오리지널 사운드, 영화에 나오던 대사들, 압박을 주던 두 청년의 보컬곡까지 영화의 즐거운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온 OST. 역시나 즐겁다.

Dope Space Nine beat space nine이 슬슬 지겨워질때쯤 절묘하게 발매된 m-flo의 신보. 휘성이야 beat space nine에도 참여했었지만,,, 아니! 클래지콰이까지 참여하다니… 역시 결론은 ‘아싸 좋구나’


나는 눈(雪)을 좋아했다. 아니 지금도 좋아한다.
어릴적 눈이 오면 동생과 나는 집앞에 나가 몇시간동안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곤 했다. 물론 지금은 눈사람을 만드는 일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함박눈이 내리면 아무 생각없이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겨울은 춥고, 푸르름이란 찾아볼 수 없는 삭막한 공간을 만들어내지만 그래도 눈이 있어 외롭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군대를 가기전에는 사람들에게서 군대를 가면 눈이 싫어지게 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눈이 오면 하루종일 눈을 쓸어야 하기 때문인데, 하루종일 누군가의 명령으로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면 아무리 눈이라도 싫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체험해 보지 않았기에 그런게 어떤 기분일지는 알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난 군대에 갔고 겨울이 왔다. 2004년의 새해가 지나 봄이 찾아올 무렵 갑자기 엄청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태어나서 이런 눈은 본적이 없다고 느낄 정도로 밤낮으로 눈이 왔다. 백년만의 폭설이었고 공교롭게도 내가 근무하던 곳의 적설량은 전국 최대를 기록했다.
마치 눈의 나라에 온 느낌이었다. 소설 ‘설국’의 배경이 아마 그렇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였다. 근무지에 있던 수영장 지붕은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으며, 길을 걸을때면 무릎까지 눈이 올라왔다.
물론 밖이었다면 그런 경치를 마음껏 즐기며 감상에 젖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있던 곳은 군대였다. 당연히 눈이 오면 쓸어야 한다. 그야말로 하루종일 눈을 쓸었다. 쓸어도 쓸어도 눈은 계속 왔기에 언제까지 눈을 치워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몇일간 눈을 쓸다 보니 눈이 오는게 갑자기 원망스러워졌다. 그렇게 아름답던 경치를 만들어내던 눈들은 치워야 할 무언가가 되어 있었고 눈이 오는 양에 비례해 할 일은 더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했다. 난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싫어 그 상황에 대한 불만을 눈에게로 돌렸다. 국가에 대한 봉사 혹은 단순한 운동이라고 생각해 버린다면 즐겁게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하기 싫은 것에 그런 이유를 갖다 붙이는 것도 힘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눈을 치우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눈을 그렇게도 좋아했는데 몇일간 고생 좀 했다고 해서 벌써 싫어졌다면 그걸 내가 진정 좋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쉽게 싫어지는 것인데 내가 좋아했다고 할 수 있을까?’
좋아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냥 좋으면 좋은것일까? 그리고 그냥 싫어지면 또 그걸로 괜찮은 것일까? 많은 사람들은 무언가에 쉽게 빠져든다. 그래서 ‘나는 어떤 가수의 광팬이예요.’, ‘나는 그 사람을 죽도록 사랑하죠’ 따위의 말을 쉽게 한다. 하지만 그 광팬이 그 가수의 CD한장 가지고 있지 않거나, 오늘 사랑했던 그 사람이 내일은 타인이 되어 있는 경우를 많이 본다. 아직도 ‘좋아한다’의 의미를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준다 해도 쉽게 싫어지거나 혹은 싫증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