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친


요시모토 바나나는 그녀의 글을 읽는이의 가슴을 그의 언어로 젖게 하는 힘이 있다. 그녀의 소설들이 항구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느냐에 대해서 내 생각은 회의적이지만 현재의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감동을 줄 수 있다는데서 그녀의 글은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녀를 무라카미하루키와 자주 비교하곤 하지만 솔직히 문체는 바나나의 글이 더 읽기 편하다. 하루키의 글에서 느껴지는 냉정함과는 달리 바나나의 글은 문장 하나하나가 아름답고 섬세하며, 따뜻하게 느껴진다. 10대소녀의 감수성이랄까? 막연하지만 그런게 느껴진다.
‘키친’은 3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앞의 두편은 내용이 이어지고 마지막 ‘달빛그림자’는 다른 이야기다.
그녀는 ‘산 사람들은 어떻게든 즐겁게 살아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한다.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의 다리와 동일한 역할을 하는 ‘달빛그림자’에서의 다리를 통해 잠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만 그녀는 절대 건너가지 않는다. 우리는 여기 살아 있다. 그런만큼 최대한 열심히 즐겁게 살아야 한다.

인상깊은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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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언제나 너무 노골적이라서, 그런 희미한 빛의 소중함을 모두 지워버린다.

세계는 딱히 나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나쁜 일이 생길 확률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나 혼자서는 결정할 수 없다. 그러니까 다른 일에는 대범하게, 되는 대로 명랑하게 지내는 편이 좋다.

사람이란 상황이나 외부의 힘에 굴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자신의 내면 때문에 지는 것이다.

길은 항상 정해져 있다, 그러나 결코 운명론적인 의미는 아니다.
나날의 호흡이, 눈길이,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자연히 정하는 것이다.

정말 좋은 추억은 언제든 살아 빛난다. 시간이 지날수록 애처롭게 숨쉰다.

티티새


예전부터 요시모토 바나나라는 작가는 알고 있었고 그녀의 ‘키친’이 소위 말하는 대박을 터뜨렸다는것도 알고 있었지만 왠지 그의 작품에는 그리 흥미가 없었다.
이유는 단순하게도 그녀의 필명이 ‘요시모토 바나나’였기 때문인데, 아무래도 바나나는 내가 그리 좋아하는 것은 아니고 또 필명을 바나나따위로 쓴다면 그녀가 쓰는 글들도 가볍고 순정지향적이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어쨌든 도서관에서 ‘냉정과열정사이’를 찾다가 포기하고 그냥 한번 읽어볼까 하는 생각으로 읽었는데 결과적으로 매우 괜찮았다.

작가는 티티새를 쓴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아무것도 없음, 언제나 바다가 있고, 산책과, 수영과, 해 질 녘이 되풀이될 뿐인 나날의 느낌을 어딘가에 반듯하게 정리해 놓고 싶어 이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저나 우리 가족이 기억을 잃는다해도, 이 책을 읽으면 그때를 그리워할 수 있겠죠.’

또 마리아(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밤바다에 서 있었던 쿄이치가 츠구미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도, 요코 언니의 눈물의 무게도, 그것은 누구에게도 전할 수 없는 마음의 보물이니까.’

누구든지 마음의 한구석 어딘가에 간직해둔 기억이 있다. 이 책은 ‘추억’이라고 말할 수 있고, 그렇기에 소중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기억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츠구미는 어릴때부터 몸이 약해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깊은 애착을 나타내는 소녀다.
그녀는 바다가 곁에 있는 여관에서 살며 그곳을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바닷가에서 수영도 제대로 할 수 없는 허약한 몸을 가지고 있다. 어릴때부터 그런 삶을 살아왔기에 겉으로는 죽음이란것에 태연한 척 하지만 그녀가 삶에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가 주변 사람들에게 하는 행동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다.
자주 주변사람들을 곤란하게 하고 냉정한 말도 내뱉으며 반면에 그것이 얼마나 미안한 일인지 마음속으로는 느끼고 있지만 멈출 수가 없다.
뭐든 항상 곁에 있다면 그것의 소중함을 느낄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뭐든 멀어져야 소중함을 깨닫는다.
츠구미는 자신이 사랑하는것을 위한 무리한 작업때문에 죽음의 문턱까지 다가가서 말한다.

“이렇게 모든 것에 관심이 없어진 적, 한번도 없었다고, 어떤 때는 말이야. 정말 내 안에서 뭔가가 빠져나가 버린 것 같아. 지금까지는 죽는 것 따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는데. 하지만 지금은 무서워. 스스로 의욕을 북돋으려고 해도, 짜증만 나고 아무것도 안 나와. 한밤중에 그런 생각을 해. 이대로 회복되지 않으면, 죽을 거야, 그런 느낌이 들어. 지금, 내 안에는 열정이 하나도 없어, 이런적 처음이야. 증오심도 없고. 병상에 누워 있는 보잘것없는 소녀가 된 기분이야. 하나씩 떨어지는 낙엽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주위 사람들이 조금씩 기운을 잃어갈 나를 바보 취급 할 것 같고, 조금씩 그림자가 엷어져 간다고 생각하면 미칠 것 같아.”

이 말을 통해 이전까지의 그녀의 삶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느낄 수 있다.
그녀는 자기집앞에 펼쳐진 바다를 사랑하고, 그의 가족과 사촌인 마리아의 그녀에 대한 애정을 느낄 줄 알고 고마워할 줄 알며, 애인인 쿄이치도 무척이나 사랑한다. 그녀는 지금 그녀가 살고 있는 삶을 너무나 사랑하며 그 삶에 대한 열정이 넘쳐난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한석규는 말한다. 모든것이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맞는 말이다.
또 영화 ‘트로이’의 아킬레스는 인간은 누구나 끝이 있기에 아름다우며 그런 인간을 신은 질투한다고 말한다.
이 말도 맞는 말이다.
모든것은 추억으로 그치지만 사람들은 그 아련한 추억들을 가슴속 깊은 곳에 담아두고 산다.

작가가 말하는 책을 쓴 의도와 첫사랑, 여름방학이라는 소재는 무척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한다.
또 요즘은 무라카미하루키의 책만을 주로 읽다가 여성작가의 책을 읽다보니 문장 하나하나의 표현이 매우 부드럽고 개개인의 심리에 대한 묘사라던가 주변에 대한 묘사가 여성답게 매우 세심하고 그 시선 또한 매우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소설일뿐이지만 이런면에서 남자와 여자는 보는 관점이 다른면이 있구나… 하고 생각한다.

아무튼 보는 내내 무척 즐거웠던 사랑스러운 작품이었다.

2004/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