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엽감는새-4


3,4편에서는 1,2편보다 더 비현실적인 내용들이 전개되느라 읽는데 꽤나 힘이 들었지만 마지막 4편까지 다 보고 났을때 나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안도감이 들었다.
태엽감는 새의 주인공은 하루키의 이전 작품의 주인공들과는 약간 다른 듯 하다.
아내를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그의 이야기는 마치 ‘모험기’를 읽는 듯했고, 오컬트한 분위기가 감도는 우물과 호텔등의 이미지들은 현실과 맞물리며 해설에서도 나와있듯이 마치 조각퍼즐을 맞추는 기분이었다.
정신이 현실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정신속의 주인공이 와타야 노보루를 야구방망이로 때려서 거의 coma 상태로 만들어버리는 장면은 매우 바람직 해(?) 보였다.

— 인상 깊은 구절 —
나는 눈을 감고 다가오는 죽음을 되도록 조용하고 평온하게 받아들이려고 했다.
겁먹지 않으려고 애썼다. 적어도 나는 몇 가지는 남길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사소하지만 좋은 소식이었다. 좋은 뉴스는 대부분의 경우 작은 목소리로 말해진다.
나는 그 말을 떠올리고 미소 지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잘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죽는 건 역시 무서워”라고 나는 작은 소리로 혼자말을 했다.
그것이 결국 내 마지막 말이 되었다. 특별히 인상적인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바꿀 수는 없다.
물이 내 입을 넘었다. 그 다음 내 코에 이르렀다. 나는 호흡을 멈췄다. 내 폐는 필사적으로 새 공기를 빨아들이려고 했다.
그러나 이제 그 곳에는 공기가 없다. 있는 것은 뜨뜻미지근한 물뿐이었다.
나는 죽어 가고 있었다.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런데 태엽 감는 새님은 모를 수도 있지만 집오리는 아주 유쾌한 사람들이랍니다.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어도 전혀 싫증이 나지 않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왜 이들에게 흥미를 갖지 않고, 굳이 멀리까지 가서 돈을 내고 시시한 영화 따위를 보는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요.
예를 들면 이들은 푸드득푸드득 공중을 날다가 얼음위에 착지하는데, 발이 쭉 미끄러지면서 팔딱 넘어져 떼굴떼굴 구른다든가 하거든요.
마치 텔레비전의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그렇듯이 말이죠.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며 혼자서 낄낄거리며 웃곤 해요.
물론 집오리 사람들이 나를 웃기려고 일부러 코미디를 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요. 진지하게 열심히 살아가다가 느닷없이 떼구루루 구르거든요.
그런 거 멋있지 않나요?

숲 속을 나란히 걷고 있을 때 가사하라 메이는 오른손의 장갑을 벗고 내 코트 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었다.
나는 구미코의 몸짓이 생각났다. 그녀는 겨울에 함께 걸을 때면 자주 그렇게 하곤 했다.
추운 날에는 주머니 하나를 공유하는 것이다. 나는 주머니 속에서 가사하라 메이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작고, 깊숙한 곳에 있는 영혼처럼 따뜻했다.

‘사람은 섬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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