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런던 마지막날이다. 이미 보고 싶은 건 다 봤고, 더 보고 싶은 것도 없다.
랜드마크 구경가는 건 여행이 며칠 안됐음에도 약간 질려 있었다. 사실 그런거 볼려고 여행 온게 아닌거 같기도 했다.
암튼 오늘은 발길 닿는데로 떠돌기로 했다. 저녁엔 프라하로 가는 비행기도 타야 하고…

갈데도 없어서 근위병 교대식이나 다시 보러 갈까 했는데 역시 GG다. 거리는 이미 저글링으로 인구수 200 다 채운 느낌이다.
한국인들만 사진에 환장하는 줄 알았는데 외국인들도 사진 열심히 찍는다. 외국인들도 본 목적이 구경이 아니라 사진 찍는거 같았다.

철창 넘어에서 뭘 하긴 하는데 이미 넘쳐나는 사람들 때문에 흥이 다 깨졌다. 사실 교대식 같은거야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더 편하게 볼 수 있다.
대충 교대식을 보고 하이드 파크 가서 죽치고 앉아서 쉬다가 배가 고파서 하이드파크 위쪽 동네를 가봤는데 점심 먹을만한 곳이 없었다. 다시 죽도록 코치스테이션까지 걸어 내려와서(2일간의 고된 행군으로 이미 떡실신 지경) 근처 가게에서 영국의 피쉬앤칩스를 먹어보기로 했다.
영국의 음식문화는 악명이 높기 때문에 피쉬앤칩스도 그다지 먹어보고 싶진 않았지만 파운드화도 좀 남았고 빅맥보다 좀 비싼걸 먹어보고 싶기도 했다.

아 ㅄㅄㅄ 이걸 왜 돈받고 파는건지. 배만 안고팠으면 절반도 못 먹을뻔 했다. 칩스는 말 그대로 감자튀김이고, 피쉬는 대구 튀겨놓은건데 이것보다 한국에서 명절에 먹는 대구전이 훨씬 맛있다고 장담한다.

점심을 먹고 나서 오이스터 카드를 환불받으러 갔다. 오이스터 카드를 직역하면 굴카드다. 왜 이름이 굴카드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영국에선 이거 하나면 외국인이고 내국인이고 버스와 전철을 모두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편하다. 사실 런던은 일정이 넉넉하면 모두 걸어다닐 수 있을 정도의 규모이다. 그리고 여행 다닐땐 전철이나 버스 타고 어딜 빨리 가기보다는 출발지와 목적지 사이의 거리를 천천히 구경하는 것도 재미가 쏠쏠한 것 같다.

카드를 교환하고 시간이 남아돌아서 그냥 거리를 싸돌아 다녔다. 영국도 자동차는 거의 수입하므로 메이커는 대부분 포드나 도요타, 아우디, 폭스바겐 등등이 주를 이룬다. 거리를 다니며 차 내부를 유심히 봤는데 대부분이 수동이다. 또 카오디오가 아직도 카세트테잎이 달려 있는 차가 많았다.

거리 돌아다니기에도 지쳐서 비행기 타러 가기 전까지 벤치에 앉아 있기로 했다. 이제는 여행이고 뭐고 귀찮다. 왠지 괜히 여행 온 거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무래도 체력이 있어야 뭐든 흥미가 생기는 법인데 너무 무리해서 그런것 같았다.
쉬면서 영국 동전을 봤는데 여왕님 그림이 다 제각각이다. 처음엔 다 똑같은건지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해마다 점점 옆모습이 뚱뚱해지고 있다. 참 쓸데없는데 신경 쓴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반대로 세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동전 디자인이 참 다양하다. 파운드는 억지로 다 썼지만 페니는 도저히 쓸 곳이 없어 결국 한국까지 가져왔다.

이제 공항으로 갈 시간이 되어 민박집에서 짐을 찾기로 했다. 2박3일간 머물렀던 ‘싸이런던’ 민박집. 정말 웃기는 곳이다. 여기 욕을 다 쓰려면 200자 원고지 100장으로도 모자랄 정도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니 그냥 좋게 생각하고 말 일이다. 그래도 이 한마디는 하고 올 걸 그랬다는 생각은 든다. ‘아주머니. 민박집 해서 빌딩 세울려고요?’

떠나는 버스 안이다. 아무래도 며칠간 머물렀던 도시를 떠나면 조금은 우울해진다. 영국에 처음 왔을때는 모든 것이 이국적이었지만 이제는 차창 밖의 모든 풍경들이 친근하다. 다시 내가 영국에 올 일이 있을까? 앞 일은 모르는거라지만 올 가능성이 거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아쉬운 풍경들.

어느새 루톤 공항에 도착했다. 루톤공항은 소규모 공항이다.

비행기 타기까지 시간이 좀 남아 버거킹에서 와퍼세트 하나 먹고, 과일이 먹고 싶어 simply food 가서 포도를 샀다. 앉아서 포도를 먹고 있는데 비행기 시간이 다 되서, 출국심사 하는 곳으로 갔는데 당연히 과일은 들고 갈 수 없으므로 입에 포도를 억지로 다 쑤셔 넣었다.

루톤 공항 면세점이다. 소규모 공항 치고는 나름 괜찮았지만 별로 살 것도 없고, 시간도 없었으므로 면세점은 패스.

소규모 공항인만큼 비행기들도 작다. 작은 비행기는 왠지 겁나고, 또 야간비행이기에 더 겁나지만 재밌을 것 같기도 했다.

덕후들은 언제 어디서든 셀폰으로 게임을 한다. 넌 역시 덕후라고 마구 놀려줬다.

우리가 탈 스카이유럽의 항공기. 생각보다 작았지만 비행기는 새것 같았다.

내 자리는 3열중 맨 왼쪽. 오른쪽엔 어떤 노부부가 타고 있었다. 저가항공기는 첨 타봤는데 비행기가 뜰때 호흡기라던가 기타 장비 사용법을 저렇게 직접 보여준다. 그런건 아무래도 좋은데 스튜어디스가 정말 엘프였다. 영국을 돌아다닐때도 엘프를 몇번 보긴 했지만 스카이유럽의 스튜어디스들은 정말로 상급엘프들이었다. 동유럽에는 미인이 많다더니 사실인 것 같다.
근데 이 사진을 찍을때 내 옆의 할아버지가 나를 미친놈 쳐다보듯 봤다고 내 친구가 나중에 말해줬다. 그래도 이쁜건 이쁜거임.

런던에서 프라하까지는 비행기로 2시간을 조금 더 걸린다. 프라하에 도착했을때엔 이미 저녁 12시 가까이 되어 있었다. 입국심사 하는 사람들은 피곤해보였다. 그래서인지 입국심사는 런던에 비하면 너무 간단했다. 그냥 여권만 보고 패스다.

짐을 찾고,

프라하 공항을 나서면서 가장 놀랍고 반가웠던 것. 나는 삼성을 좋아하진 않지만 이런걸 보면 누구라도 반가워 할 수 밖에 없을 듯.
공항 앞에서 AAA택시를 타고 목적지인 OK하우스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은 런던과는 다른 느낌이다. 동유럽이라 그런지 뭔가 좀 허전하고, 건물이 있어야 할 곳에 없는 느낌이다. 공산권 국가였다는 선입견도 있었고, 가로등이 별로 없어서 그런 느낌을 가졌던것 같기도 하다.

얼마 후 OK하우스 도착. OK하우스는 깨끗한 주택가에 위치해 있었다. 런던의 민박집이 워낙 뭐 같았기 때문에 OK하우스는 마치 천국 같았다. 런던 싸이월드 같았으면 8명은 재울 것 같은 방에 4명만 재우는 것 부터가 감동이다.
내일부터 또다른 도시에서의 여행이 시작된다는 설레임에 기분 좋게 잘 수 있었다. 이제 프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