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 / 인천->홍콩->런던

# 여행기를 시작하며

항상 이게 가장 싫다. 여행 다녀와서 여행기 쓰는거… 안쓰면 아쉽고, 그렇다고 쓰려고 해도 이제는 추억으로 남아 있는 기억을 더듬어 가봤자 지금의 싱숭생숭한 기분이 더해질 뿐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인데 글쓰기가 귀찮다. 하지만 기억은 점점 흐려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좋았던 느낌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기억하고 싶기에 나는 여행기를 써야 한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것 밖에는 없다.
오늘은 예전에 사두고 보지 않았던 DVD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봤다. 싱숭생숭한 기분을 영화가 위로해 줄 것 같아서 였다. 영화는 이런 대사로 시작한다.

언젠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 거야
베르나르는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다시 고독해지고
모든 게 다 그래
그냥 흘러간 1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지
네, 알아요
조제가 말했다


# 28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언제나 여행 가기 전 준비를 할때가 가장 좋다. 여행을 시작하면 그 전에 꿈꿔왔던 여정들은 현실이 되고 현실이 되어 버리면 웬일인지 약간은 시큰둥해 진다. 아무튼 모든 준비를 꼼꼼히 마치고(비록 짐도 한번만에 싸긴 했지만) 새벽 3시가 넘어 버스터미널로 갔다. 리무진 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가는데 이상하게 설레이지가 않았다. 예전엔 소풍만 가도 하루전부터 설레였는데 말이지… 인천공항에 도착해 체크인을 마치고 면세점 구경이나 하다가 내가 타고 갈 CX415편이 있는 게이트로 향했다. 이 녀석은 홍콩까지만 우릴 데려다준다. 어쨌든 사진 한방 찍어주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래도 신기하다. 땅에선 날씨가 참 구질했는데 조금만 올라가니 이렇다. 항공기는 이렇게 고도를 높여갈때가 가장 좋다. 조금 있으면 밥을 주기 때문이다. 밥을 먹고 나면 지겨운 시간과의 싸움 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얼마 안 있으니 기내식이 나왔다. 캐세이퍼시픽의 기내식은 참… 뭐라 할 말이 없다. 이번 여행에서 캐세이퍼시픽의 기내식을 7번 먹었는데 한마디로 느끼 7단 콤보였다. 사진에서도 느껴지는 이 느끼함… 국수를 시켜도, 고기를 시켜도 소스는 다 비스무리한 것 같고 그냥 다 느끼할 뿐이다. 메인디쉬를 먹고 빵에 버터까지 발라먹으면 마가린버터3세 리마리오도 울고 갈 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캐세이퍼시픽은 홍콩을 경유하므로 홍콩공항에서 3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했다. 홍콩공항은 인천공항과 별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았다. 인테리어나 면세점이나 다 비슷비슷하다. 조금 다른건 화난 듯한 홍콩 사람들의 목소리가 많이 들린다는거… 구경 조금 하다가 그것도 귀찮아 져서 우리를 런던 히드로공항으로 데려다 줄 CX253편이 있는 게이트 앞에서 죽치고 있었다. 그래도 이때는 의자에 앉아 창밖으로 보이는 거대한 비행기만 바라보고 있어도 좋았다. 이제 여기보다 더 좋은데로 갈꺼니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느덧 시간이 되어 런던행 CX253에 탑승했다. 여전히 낮이고 하늘은 아름답다. 구름 위에는 정말로 아무것도 없다. 그저 내가 타고 있는 비행기 하나 뿐이다. 경치 구경이고 뭐고 할 것도 없고 지루하게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야한다. 거기서 나를 위로해 줬던건 귀여운 홍콩 스튜어디스들이였다. 물론 그녀들이 나를 직접 위로해 준게 아니라 내가 그런 느낌을 받았을 뿐이다. 어찌됐든 아름다운 사물을 바라볼 때는 기분이 좋다. 위로 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던건 나 뿐만이 아니었다. 옆에서도 친구 녀석이 침을 질질 흘리며 스튜어디스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상실의 시대의 오프닝엔 주인공이 보잉747기를 타고 함부르크공항에 착륙하는 내용이 있다. 거기서 주인공이 갑자기 흘러나오는 비틀즈의 ‘norweigian wood’를 듣고 옛 기억을 떠올리고는 머리가 아파지자 스튜어디스가 다가온다.

스튜어디스가 다시 와서 내 옆에 걸터앉더니 이제 좀 괜찮냐고 물었다.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어쩐지 좀 외로워졌을 뿐이예요.”
나는 미소를 지었다.
“이해해요. 저도 가끔 그러니까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흔들며 좌석에서 일어나 매우 유쾌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즐거운 여행이 되시기를 빌겠어요. 안녕히”
“안녕히!” 하고 나도 말했다.


소설 생각이 나서 나도 스튜어디스를 바라보며 귀를 만지며 얼굴을 찡그려봤다(비행기 타니까 기압차 때문에 귀가 아프더라). 그냥 쌩까고 간다. 역시 소설은 소설일 뿐 오해하지 말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홍콩에서 런던으로 가는 방법은 이것 밖에는 없다. 이 화면을 100번 쯤 쳐다보면 된다. time to destination은 끊임 없이 줄어든다.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가는 것처럼 time to destination도 계속 줄어든다. 비행기 사고만 나지 않는다면… 아무튼 나는 이 화면을 정말 100번 정도는 봤다. 영화나 드라마라고 해봤자 재미있는 것도 없고 죄다 중국어, 영어 뿐이라 머리만 더 아프다. 한국 영화도 하나 있었는데 김하늘이 나오는 ‘6년째 연애중’…. 정말 뒤지게 재미없다. 이걸 보느니 차라리 비행경로 화면이나 보고 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0시간이 넘는 비행 끝에 히드로공항에 도착했다. 다음 관문은 입국심사다. 영국의 입국심사는 빡세기로 유명하길래 나름 준비를 해 갔는데 나름 빡세기는 했다. 보통 입국할때 여권만 보고 통과시켜주는게 대부분인데 여긴 말까지 걸어줬다. ‘몇 살? 넌 교사구나? 넌 학생이고? 며칠 있을껀데? 영국 말고 어디 갈껀데? 여권에 싸인해놔야지. 잘가~’
흑인 아줌마였는데 친절하게 웃기도 하고 개그도 하고 해서 이 아줌마때문에 영국은 첫인상이 좋았던 것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짐 찾고 나와서 역에서 오이스터 카드를 샀다. 영국은 subway가 아닌 tube다. tube는 생각보다 작고 에어컨도 없었지만 그런대로 탈 만 했다. 처음엔 지하철에 에어컨이 없다는게 의아했지만 영국을 며 칠 다녀보니 영국은 에어컨 없어도 될 만한 나라다. 도대체 한여름에도 덥지가 않아.
히드로공항은 런던 외곽이기 때문에 1존까지 가려면 나름 한참 가야된다. 일단 빅토리아 스테이션까지 갔는데 정말 숙소 찾느라 개삽질을 했다. 우리가 찾아 갈 곳은 민박집인 ‘싸이런던’이었는데 전화 걸어보니까 빅토리아코치스테이션을 찾아서 어찌어찌해서 오란다. 그런데 정말 빅토리아코치스테이션을 찾는데만 30분을 넘게 소비해야만 했다. 이놈의 스테이션이 보이질 않아. 영국 사람들한테 물어보니 대답이 다 제각각이다. 이상하게 모른다고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다들 친절하게 가르쳐 주긴 하는데 가르쳐 주는데로 가보면 없다. 가다보면 큰 건물이 보인다고 하길래 가보니 죄다 큰 건물 뿐인데 어쩌라는건지…
정말 삽질에 삽질을 거듭하다 코치스테이션도 찾고 방향 잡고 가다가 마침 같은 민박집에 머무는 산책나온 사람들을 만나 겨우 겨우 숙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도착해 보니 주인이 딴 소리를 한다. 남녀 각 1명인지 알았다고… 그래서 오늘은 옆집에 재워줄테니 내일부터 여기로 오란다. ‘싸이런던’ 정말로 첫인상부터 안 좋았다. 지금 생각해도 피곤한 곳이다. 원래 29일 여행기까지 쓰려고 했는데 싸이런던땜에 쓰기 싫어졌다.
어쨌든 런던에 도착했다. 런던의 밤거리는 한국의 가을마냥 시원했고 이국적이었다. 사람들은 친절했고, 건물도 멋지고, 빨간 2층버스는 누가 런던 아니랄까봐 수없이 지나다녔다. 폴오스터의 달의 궁전의 대사가 생각난다.

여기가 내 출발점이야. 여기가 내 삶이 시작되는 곳이야.


여기가 내 출발점이야. 여기가 내 여행이 시작되는 곳이야. 나는 말로만 듣던 여왕님의 나라 영국에 있었다.

“7.28 / 인천->홍콩->런던”에 대한 2개의 생각

  1. 하하 여행기 올리기는 진짜 너무 힘들죠. 저도 반절도 못 쓰고 지쳐 버렸네요. 전 런던이 아웃도시였는데 멋지게 소매치기 당하고 대사관만 들락날락 했어요. 그래서 다시 가고 싶네요 🙁

    1. 그러게요. 전 하루 쓰고 벌써 지쳤어요. 일단 사진 리사이즈 하는거부터가 귀찮아서;;;
      전 런던인이라서 좀 체력이 있어서 그런지 런던은 너무 좋았어요. 사람들도 가장 좋았던거 같고… 저도 또 가고 싶네요. 가장 가고 싶은 곳은 스위스지만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