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 스크랩

만약 저 5월의 일요일에 중앙선 전철 안에서 공교롭게도 나오코와 만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결국
은 같은 결과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고쳐 생각했다. 아마도 나와 나오코는 그때 만나야 했기 때문에 만난 것이고, 만약에 그때 만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어딘가에서 우리는 만나게 되었을 것이다. 특별히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인생이란 비스킷 통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나는 몇 번인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다가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내 머리가 나쁜 탓이겠지만, 가끔 미도리의 이야기가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어.”
“비스킷 통에 비스킷이 가득 들어 있고,  거기엔 좋아하는 것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것이 있잖아요? 그래서  먼저 좋아하는 것을 자꾸 먹어 버리면 그 다음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만 남게 되죠. 난 괴로운 일이 생기면 언제나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 이걸 겪어 두면  나중에 편해진다고. 인생은  비스킷 통이다, 라고.”

“자, 행운이 있기를. 여러가지 일이 있겠지만 너도 상당히 강한 편이니까 어떻게든 잘해 나가리라 믿는다. 그런 게 한 가지 충고해도 될까?”
“좋습니다.”
“자기 자신에게는 동정하지 말아” 하고 그가 말했다.
“자신을 동정하는 건 비열한 인간이나 하는 짓이야.”
“기억해 두겠습니다” 하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저, 저, 뭔가 말해 줘요” 하고 미도리가 내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말했다.
“무슨 이야기?”
“뭐라도 좋아요. 내 기분이 좋아질 만한 것.”
“미도리” 하고 그녀가 말했다.
“이름을 불러 줘요.”
“너무 사랑스러워, 미도리” 하고 나는 고쳐 말했다.
“너무라니 얼마만큼?”
“산이 무너져 바다가 메워질 만큼 사랑스러워.”
미도리는 얼굴을 들더니 나를 보았다.
“자긴 정말 표현 방법이 아주 독특해요.”
“네게서 그런 말을 들으니 흐뭇한데” 하고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더 멋진 말을 해줘요.”
“네가 나무 좋아 미도리.”
“얼마만큼 좋아?”
“봄철의 곰만큼.”
“봄철의 곰?” 하고 미도리가 또 얼굴을 들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봄철의 곰이라니?”
“봄철의 들판을 네가 혼자 거닐고 있으면  말이지, 저쪽에서 벨벳같이 털이 부드럽고 눈이 똘망똘망한 새끼 곰이 다가오는 거야. 그리고 네게 이러는 거야. 안녕하세요 아저씨. 나와  함께 뒹굴기 안하겠어요? 하고. 그래서 너와 새끼 곰은 부둥켜안고 클로버가 무성한 언덕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온종일 노는 거야. 그거 참 멋지지?”
“정말 멋져.”
“그만큼 네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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