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티새


예전부터 요시모토 바나나라는 작가는 알고 있었고 그녀의 ‘키친’이 소위 말하는 대박을 터뜨렸다는것도 알고 있었지만 왠지 그의 작품에는 그리 흥미가 없었다.
이유는 단순하게도 그녀의 필명이 ‘요시모토 바나나’였기 때문인데, 아무래도 바나나는 내가 그리 좋아하는 것은 아니고 또 필명을 바나나따위로 쓴다면 그녀가 쓰는 글들도 가볍고 순정지향적이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어쨌든 도서관에서 ‘냉정과열정사이’를 찾다가 포기하고 그냥 한번 읽어볼까 하는 생각으로 읽었는데 결과적으로 매우 괜찮았다.

작가는 티티새를 쓴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아무것도 없음, 언제나 바다가 있고, 산책과, 수영과, 해 질 녘이 되풀이될 뿐인 나날의 느낌을 어딘가에 반듯하게 정리해 놓고 싶어 이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저나 우리 가족이 기억을 잃는다해도, 이 책을 읽으면 그때를 그리워할 수 있겠죠.’

또 마리아(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밤바다에 서 있었던 쿄이치가 츠구미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도, 요코 언니의 눈물의 무게도, 그것은 누구에게도 전할 수 없는 마음의 보물이니까.’

누구든지 마음의 한구석 어딘가에 간직해둔 기억이 있다. 이 책은 ‘추억’이라고 말할 수 있고, 그렇기에 소중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기억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츠구미는 어릴때부터 몸이 약해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깊은 애착을 나타내는 소녀다.
그녀는 바다가 곁에 있는 여관에서 살며 그곳을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바닷가에서 수영도 제대로 할 수 없는 허약한 몸을 가지고 있다. 어릴때부터 그런 삶을 살아왔기에 겉으로는 죽음이란것에 태연한 척 하지만 그녀가 삶에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가 주변 사람들에게 하는 행동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다.
자주 주변사람들을 곤란하게 하고 냉정한 말도 내뱉으며 반면에 그것이 얼마나 미안한 일인지 마음속으로는 느끼고 있지만 멈출 수가 없다.
뭐든 항상 곁에 있다면 그것의 소중함을 느낄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뭐든 멀어져야 소중함을 깨닫는다.
츠구미는 자신이 사랑하는것을 위한 무리한 작업때문에 죽음의 문턱까지 다가가서 말한다.

“이렇게 모든 것에 관심이 없어진 적, 한번도 없었다고, 어떤 때는 말이야. 정말 내 안에서 뭔가가 빠져나가 버린 것 같아. 지금까지는 죽는 것 따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는데. 하지만 지금은 무서워. 스스로 의욕을 북돋으려고 해도, 짜증만 나고 아무것도 안 나와. 한밤중에 그런 생각을 해. 이대로 회복되지 않으면, 죽을 거야, 그런 느낌이 들어. 지금, 내 안에는 열정이 하나도 없어, 이런적 처음이야. 증오심도 없고. 병상에 누워 있는 보잘것없는 소녀가 된 기분이야. 하나씩 떨어지는 낙엽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주위 사람들이 조금씩 기운을 잃어갈 나를 바보 취급 할 것 같고, 조금씩 그림자가 엷어져 간다고 생각하면 미칠 것 같아.”

이 말을 통해 이전까지의 그녀의 삶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느낄 수 있다.
그녀는 자기집앞에 펼쳐진 바다를 사랑하고, 그의 가족과 사촌인 마리아의 그녀에 대한 애정을 느낄 줄 알고 고마워할 줄 알며, 애인인 쿄이치도 무척이나 사랑한다. 그녀는 지금 그녀가 살고 있는 삶을 너무나 사랑하며 그 삶에 대한 열정이 넘쳐난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한석규는 말한다. 모든것이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맞는 말이다.
또 영화 ‘트로이’의 아킬레스는 인간은 누구나 끝이 있기에 아름다우며 그런 인간을 신은 질투한다고 말한다.
이 말도 맞는 말이다.
모든것은 추억으로 그치지만 사람들은 그 아련한 추억들을 가슴속 깊은 곳에 담아두고 산다.

작가가 말하는 책을 쓴 의도와 첫사랑, 여름방학이라는 소재는 무척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한다.
또 요즘은 무라카미하루키의 책만을 주로 읽다가 여성작가의 책을 읽다보니 문장 하나하나의 표현이 매우 부드럽고 개개인의 심리에 대한 묘사라던가 주변에 대한 묘사가 여성답게 매우 세심하고 그 시선 또한 매우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소설일뿐이지만 이런면에서 남자와 여자는 보는 관점이 다른면이 있구나… 하고 생각한다.

아무튼 보는 내내 무척 즐거웠던 사랑스러운 작품이었다.

2004/7/15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우선 이 책은 19세미만 구독불가 딱지가 붙어있다.
이 책의 문자 하나하나는 무척 자극적이지만 묘한 상상을 끌어내는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책을 읽는 내내 왠지 모를 불쾌한 느낌과 끝없는 상실감만을 계속 느낄 수 있었다.
무언가에 중독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또 그 중독으로 인해 끝을 알 수 없는 우물바닥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어떤것인지 보게 된다.

류는 1인칭시점으로 자기주변의 일들을 이야기한다.
끝없는 마약복용, 혼음파티등 그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란 무척이나 충격적이지만 그는 객관적으로, 아니 그것보다는 멍한 상태로
주변의 일들을 담담하게 말한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사물을 그저 응시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는 자기가 하고 있는 것들, 주위에서 일어나는 것들에 대해 혼란을 겪는다.
어딘가 출구가 있길 바라는 나의 바램과는 달리 류는 지하철에서 부녀자를 폭행하고 친구들이 사람을 때리고 있을때 망을 보기도 하며
릴리를 목졸라 죽이려 하는등 끊임없이 무너져 가는 것이다.
그는 어쩌다 그렇게 되었을까… 단순한 개인적인 문제는 아니다. 이는 전후 일본의 상황을 파악해야만 소설의 의도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고 책의 해설에 나와 있는데 말하자면 류가 말하는 검은새란 미국을 말하며, 검은새에 의해 이질적인 문화를 주입당하게 된 일본의 6-70년대의 상황을 이 소설은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전후 일본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50년 이후 급격한 발전을 이룩할 때 많은 가치관의 혼란이 존재했다고 한다.
당연하다. 이전의 가치관과 취사선택 없이 반강제적으로 어떤 가치관이 급격히 충돌할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혼란을 겪는것이다.
지금의 중국을 보아도 어느정도는 알 수 있다.
중국의 이전의 공산사회를 벗어나 개인의 사유재산이 인정되는 사회로 급격히 변해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물질’이라는 가치는 이전의 어느것보다도 가치를 가지게 된다.
사람들은 ‘안’으로써의 well being보다는 ‘겉’으로써의 ‘well being’을 추구하게 된다.
어제 VJ특공대란 프로에서 그 이전의 어느 때보다도 겉을 중요시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때 난 느꼈다. ‘중국도 이제 성형미인이든 뭐든 상관없이 일단은 겉으로 보기에 아름다운것만을 추구하는 나라로 변해가는 거구나…’

이 책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것들이란 마약,혼음이지만 그건 그들이 망가지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지는 못한다.
그것들은 개개인의 ‘가치관’이 망가져가는 수단이거나 혹은 ‘가치관’의 붕괴로 일어나는 결과일뿐이다.

류는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빛을 가진 유리조각과 같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박하사탕의 ‘설경구’처럼 마음속으로 조용히 ‘나 다시 돌아갈래’ 를 외치고 있는것이다.
맑게 된다는 것을 꿈꾼다는 것… 어느 누구나 바라는 것이고, 그것과 더욱 멀어져 있는 상황이라면 아마 간절히 바라는 상황일 것이다.

사람이라는 곳이 본래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