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상이 시작됐어 – 스피드 레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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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 세상을 만든 것은 누구고, 이 세상을 만든 자를 만든 자는 또 누구일까? 그런 식으로 꼬리를 잡다 보면 끝이 없다. 결국 얻은 결론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저 위에 무엇인가가 있는 것은 맞는 것 같은데 그게 뭔지는 우리의 관찰의 범위, 혹은 인식의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에 아무리 생각해봤자 한가하게 상상의 나래를 편다는 소리밖에는 못 듣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 위에 있는 것들은 그만두고 ‘과연 나라는 존재 자체가 진실되기는 한건가?’ 하는 의심이 든다. 또한 내가 보는 사물은 정말 그 사물이 맞고, 내가 만나는 사람은 정말 사람이 맞는걸까? 내가 영화를 본 것이 과연 사실이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 과연 사실인가. 그리고 당신이 지금 내 글을 읽고 있는 것이 사실인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너무도 현실같이 느껴지는 꿈을 꿔 본 적 있나, 네오? 꿈에서 깨어날 수 없다면 어찌 하겠나? 꿈의 세계와 현실 세계를 어떻게 구분하지?’ – 영화 ‘매트릭스’ 중

‘최고의 힘과 꾀를 가진 악령이 나를 속이기 위해 그의 모든 힘을 쏟아 붓고 있다고 가정해 보라’ – 데카르트 ‘제1철학에 관한 성찰’ 중


98년 작품인 트루먼 쇼라는 영화가 있다. 영화에서 우리는 트루먼을 관찰한다. 트루먼의 주변 사물은 진짜이면서도 진짜가 아니다. 그의 아내는 가짜 아내고, 부모님도 가짜 부모님이다. 친구도 가짜 친구고, 그가 사는 지구도 가짜 지구다. 그는 이 모든 것을 진짜라고 느끼며 자신의 삶을 즐기지만 우리가 보기에 그는 가짜의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가 마지막에 외치는 ‘good morning, good afternoon, good night’은 역설적으로 그가 하루 종일 감시를 받았음을 말하는 것이다. 감독은 여기서 미디어와 언론이 개인에게 미치는 지나친 영향력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비록 미디어와 언론이 우리의 관찰범위를 뛰어 넘는 조물주와 같은 존재는 아니지만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렇게 비현실을 현실화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난 마치 트루먼이라도 된 것처럼 모든 것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지금 내 옆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은 혹시 나를 감시하고 있는 거 아닐까? 지금 내가 목욕하고 있는 이 욕탕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된 게 아닐까? 지금 내가 대화를 하는 친구는 내게서 뭘 원하는 거지? 등등의 의심이 이어졌다. 다행히도 그런 의심은 그리 오래가진 않았지만 요즘도 가끔씩은 이런 의심을 하곤 한다.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작품으로 2004년 개봉한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빌리지라는 영화가 있다. 좋지 않은 과거를 후세에 물려주지 않기 위해 자신들만의 마을을 만들어 그 마을을 외부와 격리 시켜 놓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노란색으로 자신들의 세상과 바깥세상을 구분하며 자식들에게 바깥세상엔 괴물이 살고 있다고 위협한다. 빌리지는 괴물의 존재만 뺀다면 마치 유토피아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곳은 도피처 그 이상이 될 수는 없다. 과거를 봉인하기 위해 진실을 외면하는 세상은 제대로 된 세상이 아니다. 이 작품에서 결국 진실은 밝혀진다. 진실이 밝혀진 뒤 그들이 더 행복해졌을지는 모르겠다. 영화를 본 사람들 중에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살고 있던 세상은 그들 생각엔 유토피아였잖아? 굳이 진실을 밝혀내서 그들이 얻은 건 뭔데?’
나도 이런 생각을 끊임없이 해봤다. ‘그들이 느끼기에 만족스런 삶이라면 굳이 불편한 진실을 알 필요가 있는 걸까?’ 하는 생각 말이다. 하물며 우리가 밝혀낸 그 진실조차 또 다른 거짓이고 진실은 또 다른 곳에 존재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99년 개봉한 조세프 루스낵 감독의 13층이라는 영화가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 영화다.


데카르트의 절대명제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로 시작하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가상현실 게임을 만드는 프로그래머다. 그가 컴퓨터로 만든 세계는 믿을 수 없이 현실적인데 플레이어가 직접 그 세상으로 들어가 그 세상의 구성원이 될 수 있고, 그 시뮬레이션 세상의 구성원들도 자신이 진짜 존재인 줄 알고 살아가는 것이다. 주인공은 시뮬레이션 속의 사람들이 진짜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는데 놀라기는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시뮬레이션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우연한 계기를 통해 자기가 사는 세상의 끝을 가보게 되는데 놀랍게도 실제 세계라 믿었던 자신들의 세계도 시뮬레이션 세계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신들은 그들의 상위 개체가 시뮬레이션 한 객체일 뿐이고, 그 객체들이 또 다른 세계를 시뮬레이션 한 것이다. 주인공은 자신을 시뮬레이션 한 주인의 세계에 가게 되고 영화는 끝을 맺는다.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이미 매트릭스를 본 뒤였기에 충격이 덜하긴 했지만 또 한번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의심을 가지게 한 영화였다.


이외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영화 중 생각나는 것은 마이클베이 감독의 2005년 작품인 ‘아일랜드’가 있으며, 소설로는 스즈키 코지의 ‘링3-루프’,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도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영화나 소설들은 우리가 진실이라고 인식하는 곳은 가짜일 수 있으며, 주인공이 진실을 찾으려 노력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으며, 실제로도 대부분 작품 속의 주인공들은 진실을 찾았다고 믿게 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 진실이 또 하나의 거짓일지는 어느 누구도 모른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진실이 또 하나의 거짓일 가능성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만 하는가? 진실의 가치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 답을 찾아보기 위해 이제부터 스피드레이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새로운 세상이 시작됐어.” – 영화 ‘스피드레이서’ 중

위 대사는 영화가 끝나갈 무렵 영화 속 등장인물 중의 누군가가 외치는 대사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이 말에 완전히 동감했다. 워쇼스키 형제가 9년 전에 매트릭스를 통해 선보였던 것처럼 연출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스피드레이서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현실이 아님을 암시하기라도 하듯 영화 속 세계는 비현실적인 총천연색 컬러로 도배되어 있으며, 레이싱에서 느껴지는 속도감은 픽사의 ‘카’나 루카스아츠의 ‘스타워즈 에피소드1’에서 나오는 레이싱 장면보다도 숨막히며 비현실적이다.
이런 비현실적인 설정에도 불구하고 스피드레이서는 어떤 영화보다도 더 현실적이다. 바로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피드레이서의 세계는 조작된 세계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그 조작은 기계에 의한 인간 정신 자체의 직접적인 조작이었지만 스피드레이서에서는 강자들의 힘의 논리에 의한 조작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주인공 ‘스피드’는 촉망 받는 레이서이기에 거대기업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다. 스피드는 고민 끝에 자신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 기업의 제의를 거절하지만 기업의 회장은 그에게 레이싱은 스포츠가 아닌 이미 조작되어 있는 거대한 산업일 뿐이고, 이런 조작된 현실을 받아들이고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 진정한 레이서가 되는 길이라며 어린애 같은 소리하지 말라고 말한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빨간색과 파란색의 두 개의 알약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한다. 파란색을 택하면 매트릭스의 세계로 돌아가는 대신 안정된 생활이 가능하고, 빨간색을 택하면 매트릭스의 세계로는 돌아갈 수 없다. 네오는 물론 빨간색을 택한다. 스피드 또한 조작된 세계에 편입되는 것을 거절했다. 이제 그의 앞에 펼쳐지는 세계는 그 조작된 세계와의 처절한 싸움인 것이다.
거기서 스피드가 추구하려는 것은 진실이다. 그것이 진정한 진실인지 아닌지는 나중의 문제다. 어차피 인간이란 진정한 진실은 얻어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의 가치는 진실을 추구하는 노력 그 자체에 있다. 이 가치를 포기하는 순간 인간의 존재가치는 없다. 진실의 추구는 그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것이며, 이는 꽃이 왜 아름다운지 학습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 것과 같다.
스피드레이서의 이야기를 최근 벌어지고 있는 촛불집회에 대입해 보자. 지금의 정부의 행태를 본다면 정부를 영화 속의 거대기업이라 봐도 좋을 것이다. 그 거대 기업이 국민들에게 현실에 순응하라 말하고 있다. 거기에 각다귀 무리 같은 찌라시 언론들이 우리들의 귀와 눈을 막고 있으며, 어떤 종교단체에서는 우리들에게 사탄의 무리의 꾐에 빠져들지 말라고 다그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들은 조작된 현실에 순응하는 대신 조작된 현실에 저항하는 방법을 택했다. 조작의 주체들은 우리에게 가만히 있으면 곧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말하며 너희들은 무언가에 선동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저 진실을 알고 싶은 것이다. 세계가 정말 가짜인지 알고 싶은 것이다. 이런 노력은 숭고하며, 용감하며, 진보적인 것이다. 워쇼스키 형제는 너무나 단순, 명료하게 세계를 조작하는 권력에 대한 저항 정신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있다. 세상이 과연 진실인지는 너희들이 직접 시도해 보아야만 알 수 있으며, 조작된 것이 확실하다면 너희들은 그 조작된 세계에 편입되는 대신 그 세계를 뒤엎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여전히 매트릭스의 이야기와 동어반복에 그칠지 모르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일관성이 더욱 진심 있게 느껴진다.

어디서든 또는 누구든 진정한 진실이 존재한다고는 장담할 수 없으며, 진실이란 한 개인이 인식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진실이다. 지금 북한의 대다수 주민들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사회의 부조리를 인식하고 탈북한 사람들은 진실을 찾고자 한 사람들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들이 남한에 도착해서 과연 남한이라는 세상이 진실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들은 이미 세상의 거짓을 알아버린 것이다. 이미 한번 거짓이었는데 또 거짓이 아닐 이유 또한 없는 것이다. 우리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음은 물론이다.
소크라테스는 ‘내가 아는 것이라곤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뿐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숭산 스님은 ‘항상 모를 뿐’이라는 자세로 나아가라고 말했다. 모르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모르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죄다. 바꿔 말해 우리가 세상의 부조리를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그 부조리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죄다. 더 나아가 그 부조리를 알고서도 침묵한다면 그것은 아예 모르는 것보다도 더 큰 죄다. 스피드레이서 외의 비슷한 맥락의 수많은 영화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그것이었다. 세상은 부조리로 가득 차 있는 정글이다. 주인공 ‘스피드’처럼 우리는 레이싱 카를 타고 그 정글을 질주해야만 한다. 그 끝에 뭐가 있을지, 그 끝까지 갈 수 있을지는 우리들만이 알 수 있다.


예철레포트에서 편집

2008년 1~2월에 본 영화


트레저헌터2
최근 케서방 나오는 영화는 다 별로던데 역시나 이것도 별로. 이걸 보느니 인디아나 존스 비디오를 한번 더 봄. 아니면 극장비 아껴서 곧 개봉할 인디아나존스4나 보는게 좋았을뻔.

기다리다 미쳐
영화보다 미칠 뻔. 예쁜여자가 많이 나오는건 좋더라만 시내 싸돌아 다녀도 요즘은 미녀 천지인데 돈내고 볼 필요까지는 없을듯.

명장
영화 보고 느낀건 이제 짱깨는 헐리우드 부럽지 않구나. 일단 대가리수로 밀고 들어오는데 이건 인건비 비싸고 찍을 땅도 없는 한국에서 어떻게 할 수도 없는거고 요즘은 짱깨 영화라도 촬영이라든가 음악이 수준급이다. 역시 짱깨는 무섭구나 이생각밖에는… 앞으로 적벽이랑 삼국지도 나온다던데.

오다기리죠의 도쿄타워
설특선영화에서 건진 작품. 항상 말하는거지만 일본영화의 이 감성. 참 부럽다. 오다기리죠는 역시나 영화내에서도 참 특이한 패션센스를 선보이시던데 그래도 간지 작살이고, 여자친구역이 잘보니 마츠다카코구나. 좀 나이 들어보이지만 역시 예쁘네. 아무튼 예상외로 너무 좋았던 영화.

추격자
최근 이렇게 잘 만든 한국영화를 못봐서 그런지 영화보다가 기절할뻔. 감독이 신인이라는데 더 기절할뻔. 어차피 짱깨 영화처럼 대가리수로 못밀고, 헐리웃처럼 돈도 못쳐바르는 한국의 상황에서 영화는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는 표본이 될수도 있겠다. 감독의 다음 작품이 더 기대되는데 감독이 대학 아직 졸업 안했다고 학교 복학한다네. OTL

원스어폰어타임
추격자와 대비되는 유치뽕짝 영화. 돈 안내고 봤으니 다행이지 돈 내고 봤으면 울뻔. 한번 본 영화는 끝을 보는 성격이라 끝까지 보기는 봤지만 영화 보는 내내 몸만 비틀다 나왔다. 근데 흥행한거 보면 이해가 안가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불평해봤자 소용없다. 세상은 점점 개판되어 간다. 그 끝이 뭘까? 이 영화 보면 알 수 있을지도…

식객
별의 커비처럼 케이크 훔쳐갔다고 모험하는 것도 아니고 영화 보는 내내 던전 탐험하는 느낌. 끝판왕 깨니까 ‘대령숙수의 칼’이라는 유니크 아이템도 떨어지고… 도저히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안되면 시리즈로 만들던지. 아무튼 좋은 소재 가지고 충분히 재밌을수도 있었는데 너무 급하게 전개하느라 억지스럽고 김빠졌음.

1번가의 기적
방송 81주년 특선대작인가 뭔가 아무튼 티비에서 하길래 봤는데 생각보다 너무 괜찮았던 영화. 사람은 꿈을 위해 살아간다는, 현실은 고달프지만 꿈이 있기에 사람의 존재이유가 있다는, 그런 진부한 이야기를 그다지 진부하지 않게 표현하는 방식이 좋았다. 마지막엔 역시나 이런류의 영화가 그렇듯 부자연스러운 결말이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꽤 재밌게 봤다. 하지원보다는 임창정 연기가 인상적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