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1 / 파리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이제 어느 도시든 좀 오래 머무르는 도시에서의 마지막 날은 그냥 발길 닿는데로 떠돌아 다니는 게 공식처럼 되어 버렸다. 파리의 마지막 날도 별로 가고 싶은 곳이 없었다. 파리에서 머물렀던 호텔은 Comfort Median Paris Congres Hotel. 여긴 티비를 틀면 야한게 잔뜩 나오기도 하고, 객실도 깨끗하고, 전망도 괜찮았지만 체크아웃 하면서 티를 두벌이나 놔두고 와서 그것이 더 기억에 남는 곳이다. 안 그래도 여름이라 티가 모자랐는데 덕분에 다음 도시부터는 헝그리한 내 코디가 더 헝그리해져 버렸다. 사실 이때쯤부턴 옷이고 뭐고 별로 신경 안 쓰면서 다니긴 했다. 그것과는 별도로 아무튼 옷은 아까웠다. 한벌은 폴로티, 한벌은 CCC티였다.


 


이날은 스트라스부르크로 가는 TGV를 예약하기 위해 동역에 갔었다. TGV는 유레일패스가 있어도 좌석예약은 따로 해야 하기 때문에 가장 먼저 좌석 예약이나 하고 돌아다니기로 했다. 여기서 예약을 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가 한국인 여자를 만났는데 다음 도시로 갈 야간열차표가 없다고 울상이었다. 성수기에 유럽에서 직접 야간열차표를 예약하는건 정말 힘들구나. 한국에서 다 예약하고 온 것에 안도감이 드는 순간이었다. 아무튼 표를 예약하고, 캐리어를 코인락커에 넣어두려다 동역에는 코인락커가 없기에 어이없이 비싼 유인 보관소에 짐을 맡겨두고(프랑스는 테러가 많아서인지 코인락커는 없고, 보관소에서는 엑스레이 검사까지 했음), 퐁피두 센터로 가기로 했다.


 


 



동역에서 퐁피두센터는 당연히 걸어갔다. 프랑스는 유럽 다른 국가보다 흑인이 많기도 하지만 동역에서 퐁피두센터로 가는 길에는 거의 흑인만 보여서 약간 무서웠다. 갱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지 일단 엄청난 떡대를 가진 흑인이 지나가면 무섭다.


 



 


어쨌든 퐁피두센터에 도착. 퐁피두센터가 프랑스에서 가지는 미술사적 가치는 둘째 치고 일단 겉모습이 사람의 피부를 벗겨내고 뼈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처럼 보여 그로테스크하다. ‘나는 내숭떨지 않아’라는 느낌이 든다.


 



 


영화 브라질이 생각나는게 왠지 무섭다. 빨간 파이프는 에스컬레이터, 파랑은 환기관, 노랑은 전기관, 초록은 수도관을 나타낸다고 한다. 타고 올라가기에 좋은 구조라 도둑들이 선호할만한 디자인.


 



 


퐁피두센터 옆에 있는 시청. 유럽에 있는 시청은 다들 이렇게 멋지다. 이런 곳이라면 공무원도 일할 맛 날것 같다.


 



 


세느강변을 걸으며 감상에 빠진다. 아름답구나. 배고파. 날씨가 정말 좋구나. 배고파. 나도 저 배 타보고 싶다. 그래도 배고파.


 



 


프랑스 경찰차는 5도어도 있다. 프랑스 국기와 매치되는 파랑 빨강 하양 디자인이 잘 어울린다.


 



 


노틀담엘 다시 왔다. 사람이 많아서 입장은 역시 포기. 프랑스의 매년 관광객수가 7000만명 정도라는데 프랑스 정도 되면 관광객 유치고 뭐고 할 필요 없을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장료가 비싸고 줄이 엄청나게 길어도 사람들은 몰려온다. 그 정도로 볼 것도 많고 매력적인 요소가 많다. 그러니 프랑스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고자세를 취할 수 있는거다. 그에 비해 한국은 ‘관광 좀 와주십쇼’ 하고 아무리 굽신거려도 안 온다. 일단 내가 외국인인데 한국을 오더라도 무지 답답할 거 같다. 안내가 제대로 되어 있길 하나, 교통이 제대로 되어 있길 하나…  나같아도 돈 더 주고 깨끗한 옆나라 일본이나 유산 풍부한 중국 간다. 거기다 모장관은 내국인 시위때문에 관광객이 줄어들었다는 개소리만 하니 한국 관광산업의 발전가능성을 알만하다.


 


 


 


노틀담에서 다음엔 어딜갈까 생각해보니 갈 곳이 없다. ‘그래 걸어서 가긴 좀 멀긴 하지만 판테온이나 가자’ 하고 합의를 보고 판테온으로 출발. 지금 구글에서 소요시간을 검색해보니 24분. 물론 우린 느긋하게 가느라 40분은 걸렸다.


 



 


판테온에 도착. 이때의 감상은 ‘아 드디어 판테온. 빨리 저기 계단 가서 쉬자.’ 였다. 여긴 지금 위인들의 납골당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함.


 



 


판테온 바로 옆은 소르본 대학. 예상은 했다만 무슨 대학이 이래? 한국의 대학에만 익숙해진 나에게 길거리 옆에 담도 없이 서 있는 대학건물은 이해 불가. 그리고 대학가에 술집도 없어. 프랑스는 대학 졸업하기가 힘들다고 ‘먼나라 이웃나라’에서 봤는데… 아무튼 니들이 고생이 많다. 이때쯤 배가 너무 고파서 근처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사 먹었다. 프랑스에만 있는 패스트푸드점인 듯 했는데 우리의 홀리프랜드 맥도널드를 안가고 여길 갔던 이유는 ‘가격이 정말 싸서’였다.


 


 


 


갈 곳이 없어 떠돌던중 사람들이 가면 후회한다는, 하지만 그래도 한번은 가봐야 한다는 몽마르뜨 언덕으로 향함. 가는 도중에 발견한 여신상의 작품명 ‘저건 또 뭐임’


 



 


소르본에서 몽마르뜨까지 전철을 탔는지는 기억이 잘 안나지만 그 당시 우리의 헝그리한 정신상태로는 걸어갔을 가능성이 80%이상이며, 가다가 이런 사진도 찍은거 보니 걸어간거 같다.


 



 


거지같은 기억이 남아있는 몽마르뜨. 시장바닥이라 길찾기도 거지같았고, 기껏 찾아갔는데 입구에서 웬 흑인이 다짜고짜 내 손을 잡고 실을 감아서 팔찌같은걸 만들어주길래 뭐 이런 착한 녀석이 있나 싶어 땡큐하고 갈려고 했더니 돈을 요구. ‘I have no money’라 하니까 ‘paper, paper’라고 지폐를 달라고 ㅈㄹ. 계속 없다고 해도 너는 그거 받아놓고 왜 돈 안주냐고 가슴까지 툭툭 쳐가며 친구들까지 불러와 협박하길래 동전 몇개 던져주고 급히 도망. 그렇게 협박하던 놈이 동전 몇개 던져주니 ‘we are friends’라며 악수를 청한다. 니미. 어쨌든 유럽 와서 처음 당해보는 황당한 시츄에이션에 말이 안 나왔다. 몽마르뜨 가면 조심하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내가 당할줄이야 ㅠㅠ 조금 걸어와 주위를 둘러보니 흑인들한테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몽마르뜨 언덕에서 실팔찌 감아주기는 인기사업인 듯 싶었다. 더 황당한건 조금 걸어가니 경찰차가 있었는데 경찰놈들은 신경도 안 쓰고 있다는 거.


조금 걸어 올라와 잔디밭에 앉아 쉬면서 생각해보니 황당했던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저 녀석들은 몇 푼 벌려고 저러고 있는가 싶어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사크레쾨르 성당. 사크레쾨르 = 성스런 마음 이라 함. 성당 내부도 무료이나 별건 없었음. 다만 언덕위에 있어 그런지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멋있긴 했다.


 



 


성당 앞에서 바라보는 파리 시내도 별건 없었음. 몽마르뜨 언덕이 그다지 높은 지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내 저끝까지 다 보이는걸 보니 파리의 건물은 대부분 저층인듯.


 



 


성당앞 계단에는 여러가지 공연이 펼쳐지고 있어 사람들이 꽤 모여 있었다.


 



 


언덕을 내려와 TGV를 타기 위해 역을 향해 걷던 중 발견한 건물. 웬 사람이 그려져 있어 놀랐다.


 



 


우리가 예약한 TGV는 19시 24분에 출발해 strasbourg로 우리를 데려다준다.


 



 


한국에서 너무 많이 봐서 별 감흥 없었던 TGV.


 



 


그래도 내부는 KTX보다 편해서 좋았다. KTX의 안락함은 거의 비행기 이코노미석 수준이기에…


 



 


몽마르뜨 언덕에서 흑인한테 삥뜯기며 받았던 맞춤형 실팔찌. 지금도 집에 있다. made in france, assembled in africa의 명품인 만큼 가보로 전수할 생각이다.


 



 


기차여행은 언제나 설렌다.


 



 


도착하니 이미 밤. strasbourg는 파리와 달리 고요했다. 그다지 큰 도시는 아닌것 같았다. 우린 예약해두었던 역 바로 앞 호텔로 향했다. le grand hotel strasbourg. 도시만큼이나 조용하고 정갈한 호텔이었다.

8.10 / 파리

파리에서의 둘째날은 베르사유(Versailles)를 가기로 했다.


결론부터 말해 베르사유는 그냥 그랬다. 일단 멀었고, 궁전같이 화려한거 이제 좀 질리기도 했고, 가장 결정적인건 사람이 너무 많았다. 현지인 구경은 안 질리는데 관광객 구경은 좀 질렸다. 그들도 우릴 보면서 그렇게 느꼈을꺼다.


 



 


전철역에다가 저런건 도대체 어떻게 그렸는지 모르겠다. 여긴 보안카메라도 없나? 분명 한국의 지하철역에다 저런걸 그리고 있었다면 10분도 안돼 잡혀갔을텐데 말이다.


 



 


파리의 급행열차 RER-C는 유레일패스 소지시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2층열차라 그런지 1층이 좀 낮다.


 



 


일찍 나온것도 아닌데 늦잠 자느라 아침도 못먹고 나왔다. 오늘의 아침 겸 점심은 역시 우리의 소울 프랜드 맥도날드. 우린 언제부턴가 맥도날드를 소울프랜드, 빅맥을 소울푸드, 콜라를 홀리워터로 부르고 있었다. 역시 소울프랜드의 친절한 점은 유명관광지 옆이라고 가격 가지고 장난 치지 않는다는 점. 어딜가나 균일가다. 그래서 그런지 베르사유 궁전 옆의 맥도날드도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다. 유럽인들도 패스트푸드 잘 먹는다. 여기선 한국인들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친구말을 들어보니 온몸에 명품이었다는… 아니 그런 귀족들이 왜 빅맥을 드시러 오셨는지… 유럽까지 서민체험하러 오셨나. 아무튼 빅맥을 포장해 나와서(어차피 매점안엔 사람이 바글바글거려 앉아 먹을곳도 없었다), 베르사유궁전앞에 도착.


 


도착 후 첫소감은… 하하하 이건 울음도 나오지 않아. 무슨 휴먼이 이래 많은지… 가이드에 아침 일찍 가라고 써있었는데도 가볍게 무시해준 벌을 지금 받는구나. 그것만으로도 족한데 갑자기 비까지 왔다. 그냥 차라리 번개를 내려주시지.


 



 


유럽에서 돈 내고 들어가는 유명관광지에 가면 필요한 가장 중요한건 돈도 아니고, 시간도 아니고 근성.


 



 


입구부터 금칠. 역시 동양이나 서양이나 비싼티 내는데는 금이 최고인듯. 궁전에 들어가니 오디오가이드를 주는데 한국어는 없다. 유럽 짱깨 프랑스놈들. 한국에서 얼마나 많이 팔아줬는데 일본어, 중국어도 있는 판에 한국어가 없다는게 말이 되나? 결국은 영어 오디오가이드를 받았으나 플레이를 눌러보니 두통이 몰려와서 결국엔 끄고 다님.




궁전 내부에서 봤던건 글 쓰기가 귀찮아서 패스.



 


궁전안에는 귀족만 있는지 알았더니 웬 거지가 구걸중. 거기다 한국인인듯.



역시 거울의 방이고 뭐고 귀찮아서 글 쓰는건 패스.


궁전밖으로 보이는 베르사유 궁전의 하이라이트인 정원. 딱 이 시점에서 카메라 배터리가 나갔다. 나름 강쇠로 유명한 400D 배터리인데 하필 이 시점에서 나갈껀 뭐람. 거기다 충전해놨다고 생각했던 보조배터리를 넣어보니 충전이 안 되어 있었다. 순간 머리속이 하얘졌다. 이 사진을 찍으려고 그 먼 한국에서 날아왔는데… ‘나는 구경이고 뭐고 관광증명 및 자랑용 사진이 필요하단 말이다!’라고 속으로 외쳤으나 현실에서 내 카메라는 이미 짐일뿐. 다 체념하고 정원을 즐기기로 했다. 친구의 디카로 찍은 사진이 있으나 올리기 귀찮아서 사진은 여기까지만.

사실 베르사유는 궁전 안보다 뒷마당이 더 멋졌다. 정원에는 ‘이래도 짐 앞에 무릎 꿇지 않을테냐’ 하는 식의 사람을 질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절대왕권이란 그 권한을 가진 자에게는 정말 좋은 것이다. 루이14세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 베르사유궁전과 정원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루이14세로 나왔던 영화 ‘아이언마스크’를 어린 시절에 비디오로 본 적이 있다. 간략한 줄거리외엔 기억에 남는게 없지만 마지막 장면만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왕과 그의 어머니가 손을 맞잡고 저멀리 있는 거대한 궁전을 바라보는 장면이었다. 그게 베르사유였는지 아닌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아무튼 난 거기서 베르사유의 정원을 봤을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것 같다.

베르사유궁전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저녁 먹을 시간. RER-C선을 타고 파리로 돌아와 갔던 곳은 에펠탑이 가장 멋지게 보인다는 사이요궁. 역시 주요 관광포인트답게 사람들 넘쳐나심. 대충 야경 좀 보고 돌아왔다.
파리의 둘째날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