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이제 어느 도시든 좀 오래 머무르는 도시에서의 마지막 날은 그냥 발길 닿는데로 떠돌아 다니는 게 공식처럼 되어 버렸다. 파리의 마지막 날도 별로 가고 싶은 곳이 없었다. 파리에서 머물렀던 호텔은 Comfort Median Paris Congres Hotel. 여긴 티비를 틀면 야한게 잔뜩 나오기도 하고, 객실도 깨끗하고, 전망도 괜찮았지만 체크아웃 하면서 티를 두벌이나 놔두고 와서 그것이 더 기억에 남는 곳이다. 안 그래도 여름이라 티가 모자랐는데 덕분에 다음 도시부터는 헝그리한 내 코디가 더 헝그리해져 버렸다. 사실 이때쯤부턴 옷이고 뭐고 별로 신경 안 쓰면서 다니긴 했다. 그것과는 별도로 아무튼 옷은 아까웠다. 한벌은 폴로티, 한벌은 CCC티였다.
이날은 스트라스부르크로 가는 TGV를 예약하기 위해 동역에 갔었다. TGV는 유레일패스가 있어도 좌석예약은 따로 해야 하기 때문에 가장 먼저 좌석 예약이나 하고 돌아다니기로 했다. 여기서 예약을 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가 한국인 여자를 만났는데 다음 도시로 갈 야간열차표가 없다고 울상이었다. 성수기에 유럽에서 직접 야간열차표를 예약하는건 정말 힘들구나. 한국에서 다 예약하고 온 것에 안도감이 드는 순간이었다. 아무튼 표를 예약하고, 캐리어를 코인락커에 넣어두려다 동역에는 코인락커가 없기에 어이없이 비싼 유인 보관소에 짐을 맡겨두고(프랑스는 테러가 많아서인지 코인락커는 없고, 보관소에서는 엑스레이 검사까지 했음), 퐁피두 센터로 가기로 했다.
동역에서 퐁피두센터는 당연히 걸어갔다. 프랑스는 유럽 다른 국가보다 흑인이 많기도 하지만 동역에서 퐁피두센터로 가는 길에는 거의 흑인만 보여서 약간 무서웠다. 갱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지 일단 엄청난 떡대를 가진 흑인이 지나가면 무섭다.
어쨌든 퐁피두센터에 도착. 퐁피두센터가 프랑스에서 가지는 미술사적 가치는 둘째 치고 일단 겉모습이 사람의 피부를 벗겨내고 뼈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처럼 보여 그로테스크하다. ‘나는 내숭떨지 않아’라는 느낌이 든다.
영화 브라질이 생각나는게 왠지 무섭다. 빨간 파이프는 에스컬레이터, 파랑은 환기관, 노랑은 전기관, 초록은 수도관을 나타낸다고 한다. 타고 올라가기에 좋은 구조라 도둑들이 선호할만한 디자인.
퐁피두센터 옆에 있는 시청. 유럽에 있는 시청은 다들 이렇게 멋지다. 이런 곳이라면 공무원도 일할 맛 날것 같다.
세느강변을 걸으며 감상에 빠진다. 아름답구나. 배고파. 날씨가 정말 좋구나. 배고파. 나도 저 배 타보고 싶다. 그래도 배고파.
프랑스 경찰차는 5도어도 있다. 프랑스 국기와 매치되는 파랑 빨강 하양 디자인이 잘 어울린다.
노틀담엘 다시 왔다. 사람이 많아서 입장은 역시 포기. 프랑스의 매년 관광객수가 7000만명 정도라는데 프랑스 정도 되면 관광객 유치고 뭐고 할 필요 없을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장료가 비싸고 줄이 엄청나게 길어도 사람들은 몰려온다. 그 정도로 볼 것도 많고 매력적인 요소가 많다. 그러니 프랑스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고자세를 취할 수 있는거다. 그에 비해 한국은 ‘관광 좀 와주십쇼’ 하고 아무리 굽신거려도 안 온다. 일단 내가 외국인인데 한국을 오더라도 무지 답답할 거 같다. 안내가 제대로 되어 있길 하나, 교통이 제대로 되어 있길 하나… 나같아도 돈 더 주고 깨끗한 옆나라 일본이나 유산 풍부한 중국 간다. 거기다 모장관은 내국인 시위때문에 관광객이 줄어들었다는 개소리만 하니 한국 관광산업의 발전가능성을 알만하다.
노틀담에서 다음엔 어딜갈까 생각해보니 갈 곳이 없다. ‘그래 걸어서 가긴 좀 멀긴 하지만 판테온이나 가자’ 하고 합의를 보고 판테온으로 출발. 지금 구글에서 소요시간을 검색해보니 24분. 물론 우린 느긋하게 가느라 40분은 걸렸다.
판테온에 도착. 이때의 감상은 ‘아 드디어 판테온. 빨리 저기 계단 가서 쉬자.’ 였다. 여긴 지금 위인들의 납골당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함.
판테온 바로 옆은 소르본 대학. 예상은 했다만 무슨 대학이 이래? 한국의 대학에만 익숙해진 나에게 길거리 옆에 담도 없이 서 있는 대학건물은 이해 불가. 그리고 대학가에 술집도 없어. 프랑스는 대학 졸업하기가 힘들다고 ‘먼나라 이웃나라’에서 봤는데… 아무튼 니들이 고생이 많다. 이때쯤 배가 너무 고파서 근처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사 먹었다. 프랑스에만 있는 패스트푸드점인 듯 했는데 우리의 홀리프랜드 맥도널드를 안가고 여길 갔던 이유는 ‘가격이 정말 싸서’였다.
갈 곳이 없어 떠돌던중 사람들이 가면 후회한다는, 하지만 그래도 한번은 가봐야 한다는 몽마르뜨 언덕으로 향함. 가는 도중에 발견한 여신상의 작품명 ‘저건 또 뭐임’
소르본에서 몽마르뜨까지 전철을 탔는지는 기억이 잘 안나지만 그 당시 우리의 헝그리한 정신상태로는 걸어갔을 가능성이 80%이상이며, 가다가 이런 사진도 찍은거 보니 걸어간거 같다.
거지같은 기억이 남아있는 몽마르뜨. 시장바닥이라 길찾기도 거지같았고, 기껏 찾아갔는데 입구에서 웬 흑인이 다짜고짜 내 손을 잡고 실을 감아서 팔찌같은걸 만들어주길래 뭐 이런 착한 녀석이 있나 싶어 땡큐하고 갈려고 했더니 돈을 요구. ‘I have no money’라 하니까 ‘paper, paper’라고 지폐를 달라고 ㅈㄹ. 계속 없다고 해도 너는 그거 받아놓고 왜 돈 안주냐고 가슴까지 툭툭 쳐가며 친구들까지 불러와 협박하길래 동전 몇개 던져주고 급히 도망. 그렇게 협박하던 놈이 동전 몇개 던져주니 ‘we are friends’라며 악수를 청한다. 니미. 어쨌든 유럽 와서 처음 당해보는 황당한 시츄에이션에 말이 안 나왔다. 몽마르뜨 가면 조심하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내가 당할줄이야 ㅠㅠ 조금 걸어와 주위를 둘러보니 흑인들한테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몽마르뜨 언덕에서 실팔찌 감아주기는 인기사업인 듯 싶었다. 더 황당한건 조금 걸어가니 경찰차가 있었는데 경찰놈들은 신경도 안 쓰고 있다는 거.
조금 걸어 올라와 잔디밭에 앉아 쉬면서 생각해보니 황당했던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저 녀석들은 몇 푼 벌려고 저러고 있는가 싶어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사크레쾨르 성당. 사크레쾨르 = 성스런 마음 이라 함. 성당 내부도 무료이나 별건 없었음. 다만 언덕위에 있어 그런지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멋있긴 했다.
성당 앞에서 바라보는 파리 시내도 별건 없었음. 몽마르뜨 언덕이 그다지 높은 지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내 저끝까지 다 보이는걸 보니 파리의 건물은 대부분 저층인듯.
성당앞 계단에는 여러가지 공연이 펼쳐지고 있어 사람들이 꽤 모여 있었다.
언덕을 내려와 TGV를 타기 위해 역을 향해 걷던 중 발견한 건물. 웬 사람이 그려져 있어 놀랐다.
우리가 예약한 TGV는 19시 24분에 출발해 strasbourg로 우리를 데려다준다.
한국에서 너무 많이 봐서 별 감흥 없었던 TGV.
그래도 내부는 KTX보다 편해서 좋았다. KTX의 안락함은 거의 비행기 이코노미석 수준이기에…
몽마르뜨 언덕에서 흑인한테 삥뜯기며 받았던 맞춤형 실팔찌. 지금도 집에 있다. made in france, assembled in africa의 명품인 만큼 가보로 전수할 생각이다.
기차여행은 언제나 설렌다.
도착하니 이미 밤. strasbourg는 파리와 달리 고요했다. 그다지 큰 도시는 아닌것 같았다. 우린 예약해두었던 역 바로 앞 호텔로 향했다. le grand hotel strasbourg. 도시만큼이나 조용하고 정갈한 호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