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강좌 그리고 ’05 정통인의 밤(2005.11.17)

사진출처 : 학교카페

아주강좌에 한비야씨가 오셨다. 뭐 책은 몇권 봤지만 실제로 본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나이에 비해 굉장히 젊으신 것 같았다. 자기자신도 ‘누나, 언니’로 불리길 원하신다고 했다. 자신의 모교인 홍대에선 학장이 불러도 한번도 못가봤는데 우리학교에선 벌써 2번째 강연이란다. 행운이라면 행운일까. 그 두번중의 한번에 꼈으니… 아무튼 강좌는 1초도 지루하지 않았고 정말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주로 하신 이야기는 자신의 활동범위를 국내로만 한정하지 말고 세계를 무대로 살으라는 이야기였는데 아마 최근 출판된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의 내용과 비슷한 내용일 듯 하다. 한국은 그저 베이스캠프일뿐 한국이 무대가 되어선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리고 가슴이 뛰는 일을 하라는 말도… ‘젠장 나에게 가슴이 뛰는 일이 무엇인지 나는 아직 모르겠다.’ 지금은 월드비전에서 일하신다는데 긴급구호로 그녀의 가슴은 뛰고 있으며 이제 더이상 여행은 가슴을 뛰게 하지 못한단다. 무엇인가로 인해 가슴이 뛰면 그것에 자신의 모든것을 바칠 수 있는 모습이 정말 좋아보였다. 부러웠다는 말이다. 사람의 진정한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다시 한번 실감했다.

한시간반의 강연이 끝나고 약 30분뒤에 정통인의 밤 행사가 시작됐다. 학교에서 축제를 하든지 학술제를 하든지 별 관심이 없는데 아주강좌가 끝나고 바로 하길래 그냥 봤다. 프로게이머 마재윤과 박태민이 온단다. 프로게이머는 별 관심없지만 얼마나 잘하는가 싶어 기다려서 봤는데 행사진행이 너무 미숙하고 시간을 오래끌어 진정한 경기는 보지도 못하고 정말 허무하게 끝났다. 원래는 이것만 보고 나가려고 했는데 나갈 분위기도 아니고 좀 있음 아이비도 온다고 하길래 좀 지루해도 참고 봤다. 솔직히 아이비 노래 한곡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지만 사람들이 대단하다길래 그냥 기다려서 봤는데 정말 괜찮긴 했다. 신인답지 않게 무대매너도 굉장히 좋고 축제도 아닌 행사무대에서 라이브로 열창하는 모습을 보니 인기 있을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강좌는 좋았고, 행사는 그냥 그랬지만 하루동안 유명인을 꽤 많이 봤던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인 하루.


나는 눈(雪)을 좋아했다. 아니 지금도 좋아한다.
어릴적 눈이 오면 동생과 나는 집앞에 나가 몇시간동안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곤 했다. 물론 지금은 눈사람을 만드는 일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함박눈이 내리면 아무 생각없이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겨울은 춥고, 푸르름이란 찾아볼 수 없는 삭막한 공간을 만들어내지만 그래도 눈이 있어 외롭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군대를 가기전에는 사람들에게서 군대를 가면 눈이 싫어지게 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눈이 오면 하루종일 눈을 쓸어야 하기 때문인데, 하루종일 누군가의 명령으로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면 아무리 눈이라도 싫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체험해 보지 않았기에 그런게 어떤 기분일지는 알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난 군대에 갔고 겨울이 왔다. 2004년의 새해가 지나 봄이 찾아올 무렵 갑자기 엄청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태어나서 이런 눈은 본적이 없다고 느낄 정도로 밤낮으로 눈이 왔다. 백년만의 폭설이었고 공교롭게도 내가 근무하던 곳의 적설량은 전국 최대를 기록했다.
마치 눈의 나라에 온 느낌이었다. 소설 ‘설국’의 배경이 아마 그렇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였다. 근무지에 있던 수영장 지붕은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으며, 길을 걸을때면 무릎까지 눈이 올라왔다.
물론 밖이었다면 그런 경치를 마음껏 즐기며 감상에 젖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있던 곳은 군대였다. 당연히 눈이 오면 쓸어야 한다. 그야말로 하루종일 눈을 쓸었다. 쓸어도 쓸어도 눈은 계속 왔기에 언제까지 눈을 치워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몇일간 눈을 쓸다 보니 눈이 오는게 갑자기 원망스러워졌다. 그렇게 아름답던 경치를 만들어내던 눈들은 치워야 할 무언가가 되어 있었고 눈이 오는 양에 비례해 할 일은 더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했다. 난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싫어 그 상황에 대한 불만을 눈에게로 돌렸다. 국가에 대한 봉사 혹은 단순한 운동이라고 생각해 버린다면 즐겁게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하기 싫은 것에 그런 이유를 갖다 붙이는 것도 힘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눈을 치우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눈을 그렇게도 좋아했는데 몇일간 고생 좀 했다고 해서 벌써 싫어졌다면 그걸 내가 진정 좋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쉽게 싫어지는 것인데 내가 좋아했다고 할 수 있을까?’
좋아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냥 좋으면 좋은것일까? 그리고 그냥 싫어지면 또 그걸로 괜찮은 것일까? 많은 사람들은 무언가에 쉽게 빠져든다. 그래서 ‘나는 어떤 가수의 광팬이예요.’, ‘나는 그 사람을 죽도록 사랑하죠’ 따위의 말을 쉽게 한다. 하지만 그 광팬이 그 가수의 CD한장 가지고 있지 않거나, 오늘 사랑했던 그 사람이 내일은 타인이 되어 있는 경우를 많이 본다. 아직도 ‘좋아한다’의 의미를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준다 해도 쉽게 싫어지거나 혹은 싫증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