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에 읽은 책

1월엔 대략 5권의 책을 읽었다.

월초에는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봤는데 물론 이 책을 처음 본 건 아니고 한 5번째쯤 읽은 것 같다. 맨 처음 읽은건 문학사상사의 ‘상실의 시대’였고, 그 뒤로 그 책을 한 4번정도는 읽은 것 같다. 그 뒤 김난주가 번역한 오래된 책을 구해 좀 읽어보았지만 사람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나와는 뭔가 코드가 맞지 않아 그만두었다. 그리고 이번에 구해 읽은 것은 ‘허호’역의 ‘노르웨이의 숲’이다. 번역자가 각각 다른 똑같은 책을 읽는 것을 시간낭비라고 생각해왔고 그렇기에 한번도 같은 책의 다른 번역을 읽어본 적이 없지만 ‘노르웨이의 숲’만은 여러 번역으로 읽는 게 하루키와 ‘와타나베’에 대한 예의일 것 같았다. 물론 원서로 읽는다면 가장 좋겠지만 일본어는 초급수준이며, 영문번역은 몇페이지 읽다 포기하고 말았다(이해는 갔지만 해석에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기에). 아무튼 ‘허호’역의 책은 읽기에 좋았다. ‘상실의 시대’와는 느낌상 다른 부분이 있었고, 번역도 진지한 듯 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같았다. 하루키의 문체는 그다지 많은 해석의 여지를 남기지는 않나 보다. 같은 구절에서 색다른 감정을 느끼긴 했지만 그건 책이 좋아서였지 번역이 색달랐기 때문은 아니었다.
열림원의 ‘노르웨이의 숲’을 소장하려고 아주대 근처서점과 온라인서점, 온라인 헌책방을 모두 뒤졌지만 구할 수 없었다. YES24에 문의한 결과로는 책이 절판되서 다시 들어올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한다. 지금은 문학사상사의 ‘상실의 시대’만이 팔리고 있다. 유유정의 번역도 물론 좋지만 열림원책의 표지가 더 맘에 들었고 문학사상사것처럼 엄청난 해설이 딸려있지 않은것도 좋았다. 처음 ‘상실의 시대’를 읽었을 때 엄청난 감명을 받긴 했지만 뒤의 해설을 읽을때는 머리가 아파져서 그만 두었다. 나쁜 해설은 아니었지만 어쩄든 머리가 아팠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상실의 시대’를 한권 구입해야 할 것 같다.

두번째로는 박완서의 ‘나목’. 예전에 읽었던 책과 워낙 분위기가 비슷했으므로 별로 할 말은 없다. ‘나목’은 괜찮았지만 뒤에 딸려 있던 단편소설은 좀 따분하기도 했다. 뒤의 글들이 지금의 현실과는 맞지 않거나, 아니면 아직 내가 이런 글들을 읽기에는 어린 것이 아닐까 한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은 영화로 먼저 봤고 역시 영화가 더 나은 느낌이다. 책도 좋긴 했지만 일단 내용이 너무 짧고, 그외엔 다른 단편소설이 포함되어 있는데, 조제빼곤 다 별로였다.

‘다자이오사무’의 인간실격은 ‘호밀밭파수꾼’이 생각나는 책이다. ‘호밀밭파수꾼’의 주인공보다 100배는 더 우울한 주인공이 나와 100배는 더 우울한 인생이야기를 한다. 수차례 자살시도했고 결국엔 30대의 나이로 자살에 성공한 ‘다자이오사무’의 자기반영적 소설이라고 한다. 감동을 느끼거나 할 책은 아니었지만 좀 더 그의 삶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하지만 도서관에서 검색해보니 다른 책이 없었다.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살 수 없듯이 그가 자살해야만 했던 이유는 너무 순수해 사회에 적응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인간실격’이라고 하지만 누가 ‘인간실격’인지는 어느 누구도 판단할 수 없다.

1월말쯤에 읽어던 책은 하루키의 ‘먼북소리’인데 하루키의 에세이는 보통 비슷비슷한 감동을 주었고, 그다지 큰 기대는 하지 않고 보았지만 생각외로 좋았다. 최근작 ‘해변의 카프카’나 ‘어둠의 저편’과는 다른 1980년대의 풋풋하던(?) 시절의 하루키의 글이라 그런지 그만의 감각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1980년대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노르웨이의 숲’과 ‘댄스댄스댄스’를 집필하던 시절의 풋풋하고 신선한 하루키를 만날 수 있는 책. 그와 함께 하는 유럽 여행은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