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화창한 봄날씨에 나의 사랑하는 애인과의 데이트를 위해 화성을 둘러보기로 했다….면 거짓말이고, 이번 학기에 교양으로 듣는 ‘미술의 세계’란 과목의 교수가 중간고사 전까지 수원화성을 가서 기행문을 써오라는 압력을 줘서 어쩔 수 없이, 그것도 남자친구와 수원화성을 가게 되었다. 그러고보니 수원에서 1년이 넘게 살면서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그 유명하다는 화성을 한번도 안 가본게 수원거주인으로써 너무나 부끄럽기도 했다…. 면 그것도 거짓말이다. 석굴암을 가본 뒤로 세계문화유산이라고 해도 이젠 별 감흥이 없다(물론 석굴암이 보잘 것 없다는 게 아니다. 석굴암을 가보면 들어가지도 못하고 거울을 통해서만 불상을 봐야된다. 사진 보는거랑 다를바 뭐냐).

아무튼 그렇게 가게된 화성인데, 남문부터 시작해서 동문을 거쳐 북문에서 잠시 수원 미술관에 다녀오고 다시 북문으로 돌아와 서문을 거쳐 다시 남문까지 돌아오는 코스를 계획했다.
남문은 찾기 쉬웠지만 서울의 남대문처럼 성벽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탓에 성벽을 찾기까지 조금 헤매야 했다.
문화유산이라고는 해도 그저 성벽일뿐인지라 4개의 문과 봉화대, 누각 몇개를 빼면 그다지 볼 것은 없었지만 이렇게 긴 성벽을 꽤나 견고하게 만든걸 보니 대단하다고 느껴지긴 했다.

화성을 돌면서 느낀 것은 의외로 꽤나 외국인이 많다는 거였다. 일본 사람들은 단체 관람이나 가족관람도 있었고, 백인도 꽤나 많았다.
속으로는 ‘이게 뭐라고 구경왔냐 -_-‘ 라는 느낌이 약간 들기도 했으나, 객관적으로 볼때 화성은 한국사람으로써 한번 가 볼만한곳이다.
교수님이 말했듯이 우리나라의 유산은 대부분 다 작다. 아주 유명한 곳이라 가봤자 누각같은거 하나 있을뿐이고, 국보1호인 남대문같은데 가봤자 좌절할 뿐이다. 근데 화성은 스케일이 엄청나게 크다. 물론 만리장성에 비할바는 아니지만(만리장성도 뭐 이거 비슷할꺼다),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큰 스케일로 만들어진 곳도 아마 드물꺼다.

처음엔 어쩔 수 없이 다녀온 화성이지만 화성을 다 돌고 날 무렵엔 정말 한번쯤은 가 볼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친구한테는 애인 생기기 전에는 다시는 안 온다고 말해버렸다. 그렇다. 화성은 너무 길고,,, 또 연인이 많다.
화성은 정조의 효심이 축성의 근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쟁에 의한 당파정치 근절과 강력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원대한 정치적 포부가 담긴 정치구상의 중심지로 지어진 것이며 수도 남쪽의 국방요새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화성은 규장각 문신 정약용이 동서양의 기술서를 참고하여 만든 성화주략(1793년)을 지침서로 하여, 재상을 지낸 영중추부사 채제공의 총괄아래 조심태의 지휘로 1794년 1월에 착공에 들어가 1796년 9월에 완공되었다. 축성시에 거중기, 녹로 등 신기재를 특수하게 고안·사용하여 장대한 석재 등을 옮기며 쌓는데 이용하였다.
화성은 축성시의 성곽이 거의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을 뿐 아니라, 북수문(화홍문)을 통해 흐르던 수원천이 현재에도 그대로 흐르고 있고, 팔달문과 장안문, 화성행궁과 창룡문을 잇는 가로망이 현재에도 도시 내부 가로망 구성의 주요 골격을 유지하고 있는 등 200년전 성의 골격이 그대로 현존하고 있다. 축성의 동기가 군사적 목적보다는 정치·경제적 측면과 부모에 대한 효심으로 성곽자체가 “효”사상이라는 동양의 철학을 담고 있어 문화적 가치외에 정신적, 철학적 가치를 가지는 성으로 이와 관련된 문화재가 잘 보존되어 있다.
화성은 중국, 일본 등지에서 찾아볼 수 없는 평산성의 형태로 군사적 방어기능과 상업적 기능을 함께 보유하고 있으며 시설의 기능이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구조로 되어 있는 동양 성곽의 백미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