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4 / 루체른

우리의 인생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육체의 게으름이다. 게으름의 궁극적 뿌리는 빗나간 자기 사랑이다. 그 자기 사랑을 통해서는 자신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돌아오는 이익이 전혀 없다.

어딘가에서 이 글을 읽고 내 상황과 딱 맞는 말이라 느꼈다. 여행기 남은거나 마저 써야겠다.


루체른으로 가는 날. 역시 호스텔은 우리의 침공으로 개판이 되어 있었다. 샤워를 하고 짐을 싸서 밖으로 나왔다. 주인 아줌마에게 잘 있다 간다고 말했다. 아줌마는 웃으며 고맙다고 했다.


단체관광을 오신 유럽 중년들.


인터라켄에서 브리엔츠호는 유람선을 타고 지나갔다. 유레일패스가 있으면 유람선이 공짜다.


이 빛깔을 봤을때의 감동이란…


마을도 아름답고,


당연한 얘기지만 한국인도 많았다.


유람선이 잠깐 어디를 들렀다.


IS의 설정샷


팔자 좋은 스위스인들.


유람선에서 내리니 브리엔츠역. 배가 고파 역에서 내리자마자 근처 슈퍼마켓에 갔다. 빵과 소세지, 음료수, 파프리카 등을 사와서 기차역 벤치에 앉아 허기를 채웠다.
 

계획은 여기서 골든패스라인을 타자는거였는데 시간이 안맞아서 아무거나 대충 타기로 했다.


지금까지 봤던 역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역이었다.


우리가 탈 기차가 왔다.


앞에 걸어가는 분은 한국인. 말 걸고 싶었다. 진심으로;;;


기차 타고 가다보니 옆으로 골든패스라인이 지나갔다. 얄미웠다. 진심으로;;;


예전에 중국인들이 헐벗은 산을 푸르게 보이기 위해 페인트칠을 한 만행을 기억하는데 설마 스위스인들이 강에 페인트를 풀었나.


계속 간다.


어쩐지 나른했다. 자리가 많이 남아돌아 친구와 따로 앉았는데 친구는 계속 자고 있었다.


나름 큰 규모의 도시.


루체른역에 도착.


루체른엔 루체른호와 로이스강이 있어 물의 도시같은 느낌을 준다. 도시의 아름다움은 무서울 정도.


1408년에 만들어진 슈프로이어교. 다리안에 그림이 많았음.


로이스강의 물살은 무척 셌다.


백조와 오리들이 한가롭게 쳐놀고 있었다.


1333년 건조되어 1993년 화재로 거의 소실되고 새로 만들어진 카펠교.


카펠교 안에서.


돌아다니다 배고파서 터키인이 운영하는 가게에 들어가 쏘세지와 감자튀김을 먹었다. 음식을 기다리던 중 신문을 보았는데 한국이 올림픽에서 3위를 하고 있어 놀랐다.


솔라카인가? 신기해서 찍었다.


길가다가 발견한 한국에선 듣보잡인 현대 매트릭스. 생긴건 클릭을 불려놓은 느낌.


엄청 헤매다 발견한 빈사의 사자상. 이걸 찾으려 헤매다 행인에게 길을 물었는데 자기도 여행객이라 잘 모른다면서도 지도를 꺼내 어딨는지 몇분동안 찾아 헤매시던데 너무 친절해서 미안했음. 이 사자상에는 슬픈 사연이 있다고 함.


영화 친구에 나오는 대사를 인용 ‘니는 월급은 다 우리한테서 얻어묵고 충성은 엉뚱한데 가서 맹세했다메?’를 몸소 실천하고 계신 IS군.


무제크성벽. 성탑에 올라갔는데 아무도 없어 조금 무서웠음.


로이스강에 있던 알 수 없는 시설. 수력발전기같아 보였는데 잘 모르겠음.


조금씩 날이 저물고 있었다. 야경을 즐기기로 했다.


역시나 삼각대를 가지고 나오지 않아서 난간에 기대어 야경 촬영하느라 힘들었다.


순식간에 밤. 루체른의 밤은 낮보다 아름다웠다.


카펠교의 야경은 좀 쩔었다.

이 날 저녁에는 싸이런던에서 한 방을 썼던 사람을 만났다. 그는 루체른에서 우리가 묵었던 투어리스트 호텔에 묵고 있었고, 우리와는 루체른에서 하루가 겹쳤다. 그는 내일 인터라켄으로 간다고 했고, 우린 내일 리기산을 갈 예정이었다. 만약 내일 날씨가 좋으면 같이 리기산을 가기로 했지만 다음날은 날씨가 정말로 안 좋았다. 결국 그와는 다시 만나지 못했다.

스위스에서의 마지막밤. 처음 온 나라를 떠나기 전날의 기분은 참 묘하다. 사람과 만나고 헤어질때의 느낌과 별반 다르지 않다. 왠지 서글펐다. 이별이란 다 그런 것.

8.13 / 그린델발트


스위스에서의 둘째날. 오늘은 피르스트(first)를 가기로 했다. 피르스트는 하늘 아래 첫 마을이라는 뜻. 하늘 아래 첫 마을인지는 모르겠으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연이 정말 경이롭다고 느끼긴 했다. 이 날은 스위스에서 있었던  날 중에 날씨가 가장 좋았다. 사실 이날 빼고는 날씨가 다 안 좋았다.

피르스트로 올라가는 곤돌라를 타기 위해 그린델발트 중심가(?)로 내려왔다. 어제와 달리 날씨가 정말 좋았다. 온도도 적당했고(살짝 서늘했다), 어제 푹 쉰덕에 컨디션은 최상이었다. 그런데 곤돌라 스테이션에 가니 유레일패스가 있으면 할인이 된다고 한다.  ‘우리 유레일패스 안가져왔지?’   ‘응’   ‘돌아가자’
여기까지 오는데만도 미친듯이 걸어왔는데 우린 두말없이 호스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우린 스위스프랑을 너무 조금 환전해왔었고, 어제 레스토랑에서 돈을 너무 많이 써서 한푼이 아쉬웠다.


저기를 다시 올라가야된다. 다행히 오늘은 캐리어를 들고 있진 않았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호스텔이다. 스위스에는 호스텔도 산에 있다. 아니 딱히 호스텔이라고 산에 있진 않지만 우리가 고른 저렴한 호스텔은 산에 있었다.


호스텔에 돌아와보니 사람들은 이미 다 나가고 아무도 없다. 주인 부부는 청소를 하고 있었다.


알고보니 곤돌라를 타러 가는 길은 두가지 길이 있었다. 이번엔 다른 길로 갔다. 이쪽 길이 훨씬 느긋하고 경치도 좋았다.


전형적인 스위스의 시골마을같았다. 농장일을 하고 있던 사람들은 지나가는 우릴 보고 웃으며 인사를 해줬다. 여유가 느껴졌다.


딱히 산에 오르지 않아도, 길을 걷는것만으로도 정말로 행복해지는 그런 길이 쭉 이어져 있었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저쪽에서 뛰어올것만 같다.


길을 따라 내려갔다.


BMW, 푸조, 벤츠…. ㅎㄷㄷ




곤돌라를 탔다. 타고 보니… 이건 연인용이다. 꽤 큰 곤돌라에 친구와 나 둘만 탔다. 거기다 꽤 오래 올라간다.


곤돌라의 창을 열고 바라보는 풍경.


꽤 많이 올라왔기에 이제 거의 다 올라왔나 싶었는데 아직 절반도 안 올라온거였다.


곤돌라에서 바라보는 그린델발트는 그림 그 자체.


한번에 못 올라가기 때문에 곤돌라를 갈아타야 된다.


드디어 종점에 도착.


너무 높아서 산이 구름 사이에 있다. 아니 그런데 이렇게 높은 곳에 소들이… 여기선 소가 기념촬영 포즈도 취해준다.


호수가 있다는 곳까지 올라가 보기로 했다. 꽤 멀다.


피르스트에는 소가 정말 많았다. 나는 원래 소란 느릿느릿 걸어다니는 동물인지 알았는데 말처럼 뛰어다니기도 한다는걸 여기서 처음 알았다. 송아지가 아닌 소들이 정말 미친듯이 뛰어다니길래 좀 무서웠다. 하지만 이에 굴할 내가 아니다. 우리는 맨손으로 소를 때려잡으시던 최배달의 후손 아닌가. 동물은 눈빛싸움이라고 알고 있었기에 소를 계속 노려보았으나 소도 나를 계속 노려본다. 좀 더 노려보면 뿔로 들이받을 기세다. 나는 가던 길을 계속 가기로 했다.


드디어 Bachalpsee 도착. 백두산천지도 한라산 백록담도 안 가본 나에게 높은 산에 있는 호수는 감동 그 자체.


호수 옆 대피소같은 곳 옆에 서 있던 표지판.


웬 젖은 개가 열심히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이렇게 높은데까지 와서 풀뜯느라고 니가 고생이 참 많다.


호수 위로도 길이 나 있기에 더 올라가 볼까 하다가 시간이 늦을꺼 같아 내려가기로 했다.


내려올때는 하이킹으로. 경치가 그야말로 쩔었다.
 
2262M란다. 태어나서 올라와본 가장 높은 산이었다. 고산병에 걸려 죽을뻔했다…… 는 뻥이고 정말 상쾌했다.


단숨에 마을까지 뛰어갈 수 있을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마을은 너무 멀었다[먼산].


왠지 파라마운트 로고같다. 파라마운트 로고는 스위스에 있는 마테호른봉이라고 한다.


한참 내려오고 있는데 이 부근에서 웬 일본 할머니가 오카리나를 꺼내더니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박수를 쳐주진 못했지만 정말 멋졌다.


일부러 길이 아닌 풀밭으로 걸어다녔는데 피르스트에는 소똥이 정말 많았다.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소똥은 처음 봤다.


마시면 왠지 HP가 회복될 것 같지만 보통사람이라면 이런건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못마신다.


또 한참 내려가다 보니 아저씨가 소를 몰고 간다. 소들이 풀 다 뜯고 퇴근하는 시간인가 보다. 저 아저씨 소몰이답지 않게 귀걸이까지 하시고 간지가 쪄셨다.


소몰이개가 빨리 가라고 뒤에서 계속 짖었다. 하지만 소들은 왠지 쌩까는 분위기.


소들이 너무 느긋하게 걷고 또 대변까지 수시로 보는 바람에 도저히 뒤에서 걸어갈 수 없었다. 나를 모시던 돌쇠가 ‘길을 비켜라’라고 외치니 소들이 존경의 눈빛을 보이며 한쪽으로 비켜섰다.


그리고 다시 길이 열렸다. 나는 흡족했다.


아줌마가 어린애를 데리고 하이킹을 하고 있었다.


슬슬 마을이 보인다.


곤돌라가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곤돌라가 올라오던지 말던지 닥치고 걷는다.


닥치고 걷다가 경치 감상도 좀 해준다.


MB가 보면 ‘거봐라. 자연환경 보존에 앞장선다는 스위스도 개발하지 않나. 무조건 파야된다. 강으로는 부족하니 산도 좀 파자.’ 라며 좋아했을 듯. MB는 닥치고 파고 나는 닥치고 걷는다.


이 차를 보고 왠지 브로크백마운틴이 생각났다. 히스레저씨 좋은 곳으로 갔기를.


닥치고 걸었는데도 끝이 안 보인다. 몇시간짼데;;;


설마 여기서 미끄럼틀 타고 놀으라고?


드디어 마을로 다 내려왔다.


마을에서는 고양이 한마리가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개와 고양이가 풀을 뜯는걸 본 이상한 날이었다.


숙소로 돌아왔다. 주인아저씨가 추천해 준 그린델발트산 맥주와 하이네켄을 따서 비치의자에 누워 마시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옆집에서는 누군가가 스위스호른을 불고 있었다. 술맛 나게 풍악을 울려주는건 좋았지만 참 못 불렀다.

그린델발트에서의 마지막 밤은 고요하고 고요했다.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는데도 알 수 없는 상실감을 느꼈다. 그린델발트를 떠나기 싫었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