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 프라하->빈

프라하에서의 마지막날.
프라하에서 볼건 대충 다 봤고, 빈으로 가는 야간열차를 타야하는 날이다.
 


이젠 그다지 보고 싶은 것도 없고 해서 그냥 프라하 시내를 슬슬 돌아다니기로 했다. 사실은 민박집에서 그냥 쉬고 싶었지만 여행초기인지라 아직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결국은 빈에 가서 푹 쉬고 말았지만 그건 그때 일이다.
이 사진을 보면 왠지 친근감이 든다. 프라하에 대한 친근감이기도 하고, 사진 자체에 대한 친근감이기도 하다. 이전까지 찍은 사진을 민박집에서 CD에 백업하고 백업하지 못한 사진이 이 사진부터다. 때문에 카메라를 켜고 사진보기 버튼을 누를때면 항상 이 사진을 봤다. 프라하를 떠나는 날의 날씨는 첫날처럼 덥지도 않고, 체스키처럼 비가 오지도 않았던 완벽하게 여행하기 좋은 날씨였다. 사진을 봐도 그때의 날씨가 느껴진다. 이 놈의 도시도 헤어질때가 되니 우리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준다. 겨우 3일째인데 나는 프라하에 어느정도 정이 들었다.

프라하성에 갔다가 시내로 가기로 했다. 남는건 시간뿐이므로 역시 느긋하게 걸어간다. 저 건물은 오며 가며 여러번 봤지만 뭔지 모르겠다. 궁금하지도 않았다.


또 가봤다. 하지만 역시 들어가지 못했다. 사람이 너무 많았을 뿐이고. 기다리기 싫었을 뿐이고.


너무 너무 멋져 눈이 눈이 부셔 숨을 못쉬겠어 떨리는 걸… 그렇다. 나는 지금 소녀시대의 Gee를 듣고 있다.


두번째 날 다시 보니 왠지 불쌍하다. 뒤에 있는건 개집같다. 비가 오면 들어가나?


다시 구시가지로 가서 싸돌아다녔다.


구시가지 싸돌아 다니다가 내키지는 않았지만 신시가지도 가보기로 했다. 여긴 바츨라프 광장. ‘프라하의 봄’, ‘벨벳혁명’이 시작된 곳이라고 함. 별로 볼건 없음.


프라하 도로는 어디나 이모양.


국립박물관. 당연하지만 안 들어갔다. 박물관 뒷쪽으로 가다보면 있는 가게에서 햄버거와 만두를 사먹었던 기억이 난다. 맛있었다.


프라하중앙역에 가서 프라하 국경(prague border)까지의 기차표를 샀다. 프라하는 유레일이 안먹히는 나라라서 이런것까지 사야된다. 처음 가본 중앙역은 말 그대로 개판. 당연히 1층에 매표소가 있을 줄 알았는데 옷을 팔고 있었다…. 역 근처의 지하도는 전쟁 난듯한 분위기. 아무튼 표를 사고 난뒤 짐을 싸기 위해 민박집으로 돌아가려고 트램을 탔다.


2박3일간 머물렀던 프라하OK하우스. 밥도 무제한이고, 깔끔하고, 친절하고… 아무튼 좋았던 곳. 2층 발코니로 보이는 풍경도 좋았었고, 무엇보다 느긋한 느낌이어서 좋았다. 밤에는 항상 술파티가 벌어지는데 항상 늦게 들어가서 한번도 참여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민박집에서 씨디 굽고 2시간쯤 쉬다가 다시 역으로 향했다. 프라하역은 수도의 역이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시설이 허술. 비둘기들이 역안에서 날아다니기도 하고, 냄새도 나고… 그래서인지 정겹기는 하다만.
역내 매점에서 팔던 샌드위치 가격이 너무 싸기에 동전정리 차원에서 사긴 했는데 맛은… 니들 이걸 설마 돈 주고 사먹냐. 


역에서 기다리다보니 이미 야간열차 탈 시간. 유럽에서 야간열차는 총 3번 타게 되는데 아무래도 처음이라 그런지 약간 긴장됐다. 다행히 열차는 무척이나 깨끗했고, 3인실인만큼 6인실에 비해 안전 문제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같은칸에 동승한 체코청년의 암내는 상상을 초월했다고 친구가 말해줬으나 나는 3층이었고, 그 청년은 1층이었기에 잘 잤던것 같다.

이제는 오스트리아. 프라하 안녕.

8.2 / 체스키 크룸로프


하루면 충분하다는 프라하에 2박3일이나 머물렀던 이유는 유레일패스 일정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유레일패스가 적용되지 않는 영국, 프라하에서 최대한 버텨야 15일짜리 유레일 패스를 다른 국가에서 충분히 쓸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체코에서의 둘째날은 프라하와 가까운 체스키를 다녀왔다.



아침 8시버스를 타야하므로 아침 일찍 나왔다. 전날 12시가 넘어서 들어왔기에 아침에 일어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겨우겨우 일어났다. 일단 트램을 타고 구시가지까지 가야한다. 트램을 탈땐 티켓을 스스로 펀칭해야 하지만 처음 타는 트램이었기에 그런걸 모르고 그냥 앉아 있었다. 나중에 타는 사람들이 펀칭을 하는걸 보고 뒤늦게 깨달았으나 ‘설마 아침부터 검표원들이 돌아다니겠어’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펀칭 안하고 버텼다. 역시 검표원은 없었다. 역시 체코는 좋은 나라야. 예전에 공산권국가여서 그런지 검사도 안하네. 정말 진정한 공산주의라는 ㅋㅋ
우린 그 후로도 트램과 지하철을 4번정도 더 탔는데 한번도 펀칭을 안했다. 그냥 티켓만 들고 다녔다. 물론 걸리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체코 티켓값은 비싸지도 않았는데(뮌헨에 비하면 아주 저렴했다) 그냥 내고 다닐껄 그랬다.


체스키 입구에 있는 안내도. 프라하에서 3시간 가까이 버스 타고 왔는데 여기도 블타바 강이야? 체코에는 블타바강 하나밖에 없나;;; 체스키는 13세기 남 보헤미아 지역의 한 귀족 집안에서 성을 만들고 마을을 세워 시작된 도시로 1992년 마을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었다고 한다. 근데 무슨 세계문화유산이 돌아다녀보면 죄다 펜션, 호텔뿐인지;;;


버스에서 내려 언덕을 조금 올라가니 저쪽으로 마을이 보인다. 체스키는 ‘리틀 프라하’라 불리는데 붉은 지붕의 집들이 모여 있는걸 보니 그 이유를 알만도 하다.


일찍 나오느라 아침도 못 먹어서 마을 입구에 있는 마트에서 샌드위치 재료를 사서 간단히 아침을 먹기로 하고, 마트에 들어가 통밀빵에 블루베리잼, 햄, 건포도를 사왔다(이게 도대체 무슨 조합인지;;;). 근데 햄 껍데기에 분명히 햄이 그려져 있어서 햄인줄 알았는데 뜯어보니 치즈다. 내 생전 햄맛 치즈는 첨 본다. 햄맛치즈의 그로테스크한 맛으로도 충분히 괴로운데 통밀빵이란 놈은 도저히 씹히지가 않는다. 뭐가 이리 질긴지 개를 주면 개한테 귀싸대기 맞게 생겼다. 건강이고 뭐고 난 흰빵이 좋다. 칼로리상으로도 통밀빵을 씹어먹는데 드는 에너지나 빵을 흡수해서 생기는 에너지나 비슷할 것 같다.


그렇게 대충 아침을 먹고 체스키 정복에 나섰다. 오래된 마을답게 길이 온통 지압석으로 되어 있다. 오늘도 지압 신나게 하겠네.


역시 마을 정복에는 캐슬타워 정복이 제 맛이다. 다른데 다 필요없고 우린 가장 먼저 캐슬타워로 향했다.


으하하 역시 아랫것들이 뭘 하는지 잘 보인다. ‘저기 농땡이 피고 있는 녀석을 매우 후려쳐라!’ 캐슬타워에선 영주 놀이 가능합니다.


리틀 프라하. 마치 미니어처같다.


체스키에 오면 누구나 찍어본다는 그 구도.


타워에 올라가자 체스키에는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때문에 우린 타워에 오래 머물러 있었다. 타워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은 우리에게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이야길 해줬다. 그리고 체스키 여행기를 쓰다 잠시 들른 박노자 교수의 블로그에선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맹폭으로 죽은 아이들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이라는 집단이 그런 폭력을 휘두를 수 있었던 까닭은 인간이 가진 외로움에 대한 공포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타워에 있을때 내렸던 비 때문인지, 혹은 아우슈비츠 이야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약간 외로웠다.


비가 그치고 타워에서 내려와 벤치에서 한시간 가까이를 앉아 있었다. 체스키는 프라하보다 훨씬 작고, 우린 체스키에서 하루종일 있어야 했다. 벤치에 앉아 사람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체스키엔 깃발관광이 꽤 많았다. 한국팀도 보았고, 일본팀도 많았다. 하지만 유럽팀이 가장 많았다.


처음 봤을땐 한참을 웃었던 벽화. 벽돌을 그려놓은걸 보니 체코인들도 허세가 심하다.


체스키는 관광지로도 유명하지만 강에는 온통 카누 타는 사람들 뿐이다. 다리는 카누 뒤집어지는거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꽉 차있다. 실제로 카누가 뒤집어질땐 사람들은 박수치고 환호하고 난리도 아니다. 남의 괴로움은 나의 즐거움임을 여기서도 확인.


영주의 정원에 가본다. 정원은 약간 높은 곳에 있어서 올라가야 된다.


정원 가는 길에서.


영주의 정원. 영주는 좋았겠어.


오리에게 빵을 집어던지던 녀석. 식빵 한봉지를 전부 오리밥으로 줘버렸다. 너희집 먹고 살만 하구나.
난 이때 사람이 무언가를 던지면 동물들이 본능적으로 모여드는걸 유심히 보고 베르사유의 정원에 가서 그대로 써먹었다. 주위의 담배와 쓰레기를 모아 호수에 있던 오리, 물고기들에게 집어던지고선 반응 관찰. 역시 오리와 물고기떼들은 서로 먼저 먹으려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걸 씹다가 황급히 뱉어낼때의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조넨 낄낄낄거렸다. 이 짓을 몇 번 더 하다가 친구한테 ‘사탄’소리를 들었지만 난 사람에게 의지하려는 동물들에게 자립심을 길러주려 한것 뿐이다.


다시 정원에서 내려와 마을을 싸돌아다녔다. 스마트카의 컬러와 풀밭이 잘 어울린다. 유럽엔 스마트카가 참 많다. 유럽보다 못 사는 한국에선 스마트카같은건 안 만든다. 중형차 타고 다니면서 기름값 오른다고 난리인건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어느 가게에서 팔고 있던 마귀할멈 인형. 저런걸 상자에 모셔다가 지인에게 선물했다간 그 자리에서 절교당할 것만 같다.


체스키는 유명 관광지라지만 체코인들에게는 그냥 물놀이하는 곳일 뿐.


지붕도 모자라 벽까지 온통 붉은색이던 팬션. 빨간색을 중국인만 좋아하는게 아니었어.


왠지 체스키다운 건물.


배고파서 어느 음식점에 들어가 스테이크를 먹었다. 관광지임에도 스테이크 가격이 매우 싸고 맛있다는데 놀랐고, 부드바이저 맥주의 맛에도 놀랐다. 저걸 두잔 마시고 나니 체스키는 나에게 어느 도시보다도 아름다운 곳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체스키의 골목을 다시 돌아다니며 체스키의 아름다움을 찬양했고,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는 아이스크림의 맛에 대해서도 찬양했다. 조금 취했었다.


갈때가 되니 하루종일 흐리고 간간히 비가 오던 날씨마저 맑게 개였다. 체스키는 올때보다 아름다워 보였다. 해가 떠서인지, 취해서인지는 모르겠다.


안녕. 체스키. 안녕. 부드바이저 맥주.


우리를 다시 프라하로 데려다 줄 스튜던트 에이전시 버스. 가격도 싸고, 개인용 헤드폰을 일일이 나눠주고, 화장실까지 있었다. 가장 좋은건 귀여운 여자 승무원이 있었다는 것인데 말을 할땐 어찌나 빠른지 놀랐다. 체코말에는 쉼표라는게 없나보다. 말이 그냥 랩인게 체코사람들은 다 래퍼다.


끝없이 펼쳐지는 밀밭. 돌아오는 버스안엔 중국계 사람들이 타고 있었는데 어찌나 시끄럽게 떠들던지 ‘니취팔러마’ 한번 외쳐주고 싶었으나 아까 샀던 통밀빵도 다 먹었고, 밥 사줄 돈도 없어서 참았다.


안델역에 도착하니 이미 밤. 여기서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트램으로 갈아타야 된다.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우리들의 삽질이 시작됐다. 트램은 한방향으로만 가는건 줄 알고 그냥 번호만 보고 타 버렸다. 그리고 종점에 도착할때까지 잘못 가고 있는건지도 몰랐다. 그러고선 쿨하게 종점에서 내렸다. 그땐 정말이지 무서웠다. 완전 첨 보는 동네에 와 버린 것이다(프라하는 생각보다 훨씬 큰 도시였다). 시간이 늦어서 길 물어볼 사람도 없고, 종점까지 온 트램은 운행을 안 해버리니 완전 난감.


but, 친절한 체코인이 트램 타는 곳까지 직접 걸어가면서 알려줘서 겨우 돌아올 수 있었다.
민박집에 돌아왔을땐 또 12시가 넘어있었다. 왜 우린 만날 강행군인건지.


결론 : 트램을 탈때 앞에 앉아있던 소녀는 매우 귀여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