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미학

1. BTTB앨범을 정리하다 2008년에 energy flow를 리메이크한 SBK라는 그룹의 elegy train이라는 곡이 있다는 걸 알았다. SBK는 뭐하는 그룹인지도 모르지만 원곡이 이미 검증된 곡이니만큼 리메이크 곡도 나름 괜찮은 느낌이다. 어쩐지 PV를 계속 보고 되는데, 아리따운 처자들이 슬피 울고 있어서 계속 보는건 절대 아니다.

2. 우연찮게 연속 사카모토가 관련된 곡인데, 메일함을 열어보니 스톰프뮤직에서 신보 안내 메일이 날라와있었다. 보통 이런거 잘 안 열어보는데 가을이라 그런지 ‘보사노바 듀오’라는 메일 제목에 끌려 열어보았다. 홍보문구가 ‘리사오노, 류이치 사카모토가 인정한 일본 최고의 보사노바 듀오 Naomi & Goro 두 번째 앨범’이었다. 리사오노야 일본 보사노바의 본좌시고, 사카모토도 모렐렌바움 부부와 몇장의 보사노바 앨범을 낸적이 있으니 그들이 인정한 그룹이라면 과연 어느정도일까 싶어 들어봤는데 은근 좋다. 파울라 모렐렌바움이나 리사오노만큼의 노련미는 없지만 산뜻하고, 어깨에 힘주지 않은 듯 한데, 보사노바 특유의 느긋함이 잘 전해지는 느낌이다. 덕분에 메일에서 들어보라고 올려준 이 곡을 시험기간에 시도 때도 없이 듣다가 시험 보다가 머리속에서 자꾸 생각 나서 죽는 줄 알았다. 시험 문제를 풀어야되는데 무의식적으로 계속 흥얼거렸다. 특히 어려운 전공 과목에서 그 경향이 더 심했다. 도피본능 때문인 것 같다. 어쨌든 좋은 앨범인데 한번 사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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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엊그제 진중권 교수님이 학교에 오셨다. ‘디지털 시대의 미학’이라는 주제로 미학 강의를 하셨는데 미학에 대해선 약간의 관심만 있고 거의 모르지만 진중권 교수님이기 때문에 그냥 갔다. 진중권 교수님의 네임벨류에도 불구하고 강당좌석이 모두 차 있지 않아 놀랐지만 강의는 예상한 것만큼 좋았다. 디지털 시대의 미학이란 한마디로 말하면 ‘인간은 이미 있는 세계(object)를 그대로 인식하는 주체(subject)가 아니라, 제 꿈을 앞으로(pro) 던져(ject) 아직 없는 세계를 창조하는 기획(project)이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 세계가 가상인지 현실인지는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가상과 현실의 구분이 없어진다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아무튼 강의는 좋았고 진교수님 특유의 입담에는 그저 감탄만 나올 뿐이었다. 단 1초도 쉬지 않고 어찌 그렇게 즉흥적으로 말씀을 잘 하시는지. 어떤 학생이 디지털 미학에 관심이 많은데 어떻게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을때 진교수님의 대답은 ‘구글 검색하세요’ 였다(물론 뒤에 보충 설명을 해주셨지만). 강의 끝엔 정치 관련 이야기도 좀 하셨지만 본 주제를 덮지 않을 정도의 가벼운 수준이어서 그것도 좋았다. 미학 오딧세이나 시간 나면 읽어봐야겠다.

잡생각 10/2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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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
천하가 다 아름답다고 하니 아름다운 줄 알지만 이것은 추악한 것이며, 다 좋다고 하니 좋은 줄 알지만 이것은 좋지 않은 것이다. – 노자 ‘도덕경’

수업이 끝나고 도서관에 갔다. 내가 좋아하는 자리에 앉으려 했는데 옆에 ‘하루키와 노르웨이 숲을 걷다’ 라는 책이 있다. 누가 보다 놔두고 갔나보다. ‘오오~ 하루키다. 못 본 책이네. 뭐지?’ 대충 훓어보니 하루키의 라이프 스토리 북이다. 하루키야 워낙 사생활 노출을 꺼려하는 인물이라 수필 외에는 그의 삶을 알 수 있는 수단이 없었는데 이 책은 어린 시절부터 나름 자세하게 알수 있어 좋았다.

책을 읽다가 내가 왜 하루키를 좋아하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해봤다. 뭐 당연히 작품이 좋아서지만 난 하루키 소설을 읽기전에 그의 수필에 먼저 매료됐었고 그의 수필에서 느낄 수 있었던 그의 성격때문에 이후에 읽었던 소설에서도 줄곧 좋은 감정을 가졌던 것 같다. 수필에서 느꼈던 그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했다. 그는 형식적이거나 권력적인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노자의 도덕경이 말하는 것 또한 그렇다. 사람이 어떤 사물을 아름답다고 느낄때 그 아름다움은 그 사물의 속성이 아니라 인간과 사물과의 관계일 뿐이다. 즉, 그 관계는 인식 주체마다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절대적인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거기에서는 어떤 폭력이 생겨난다.

무엇이든 기존의 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절대적인 것은 없다. 우리가 견고하다고 생각하는 과학 또한 사실은 귀납추론을 통해 쌓여온 경험의 산물일 뿐이며 언제든지 깨질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얽매이지 않는게 가장 어려우니 문제지… 항상 생각하던 결론에 다시 돌아와버렸다. 중도가 가장 어렵다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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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예전에 블로그에 써 놓은 글을 보면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나’ 라고 놀랄 정도로 지금과는 다른 생각의 글들을 발견한다. 사람은 변한다. 윗 글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라고 써놓은 것과 같이 사람의 마음도 계속 변한다. 가치판단의 기준도 변한다. 예전 블로그 글을 보면서 생각이 바뀐 것을 알아가는 것도 재밌는 일이다. 그래서 블로깅을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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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 시대에는 IT(정보기술) 접하는 사람은 소득이 높고 접하지 못하는 쪽은 소득이 낮기 때문에 소득 격차가 벌어집니다. IT 기술은 일자리를 계속 줄였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9월9일 ‘국민과의 대화’ 도중 이렇게 말했다. ‘녹색성장’에 대한 소신을 밝히다가 나온 말이다. ‘정보화는 소득의 불균형을 확산시키고 일자리를 줄였다 → 녹색화는 소득 균등화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것이다 → 일자리는 3배가 더 늘어날 것이다.’ 대통령의 결론이었다.
(한겨레 21 :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23546.html)

클린턴은 디지털 테크놀러지에 접하는 자와 못하는 자의 차이를 digital divide로 표현하고, 이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명박의 생각은 IT가 일자리를 줄였으니 IT 말고 삽질이나 하자는 거다. 한나라의 수장간 동일 현상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이러니 한국이라는 나라의 발전 가능성도 알만 하다. 그렇게 따지면 말야. 소득 격차가 생긴건 농업이 발전하면서부터니까 농업 이전의 유목 시절로 돌아가는건 어떨까. 이명박의 마인드는 여전히 70년대 이전인것 같은데 아예 기원전으로 시야를 확 넓힐 필요가 있지 않을까… 잉여생산이 생기게 되면 거기서 부의 차이가 생겨나고 계급이 생기니까 평등하게 유목이나 하자고. 아님 맘모스라도 잡던지. 디지털노마드 말고 리얼 오리지날 노마드 시절로 돌아가는게 좋을 듯.
빨갱이, 빨갱이 하는데 그렇게 보면 이명박이 빨갱이 아닌가. 이건 도대체 빈대 잡다 초가집 태우자는 전략인지, 아니면 이명박만의 네오소셜리즘인지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