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ioon

vrioon은 sakamoto와 alva noto의 콜라보레이션 앨범이다. sakamoto는 02년 alva noto와 이 앨범을 발매한 후, 05년엔 비슷한 분위기의 insen, 06년엔 revep을 발매하게 된다.
사실 난 사카모토가 alva noto와 작업한 이 음반을 처음 들었을때 아무 느낌도 못 받았다. 그 당시엔 ‘뭐가 이렇게 밍밍해? 엠씨스퀘어야?’ 이 정도 느낌이었던거 같다. 엠비언트에 아무 관심이 없던 시기였다.
발매 당시에도 팬들 사이에 ‘이 앨범 뭔가 이상해’이런 분위기가 감돌았던것 같다. 그래서 한번도 제대로 듣지 않고 그 이후에 나온 ‘chasm’이나 ‘/04’같은 앨범만 열심히 듣고 있었다. 근데 discography 정리 작업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앨범을 들어볼 수 밖에는 없기 때문에 최근에 한번 들어봤는데… 정말 뭔가 이상해. 이 음악이 이렇게 좋았어?

나는 기본적으로 음악의 멜로디를 중시하는 편인데 이 앨범은 멜로디같은거 별로 없다. 비트도 없다. 몇박자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멋대로 연주하는거 같다. 그런데 좋다. 여백의 미가 느껴지고, 귀가 깨끗해지는 느낌이랄까. 무슨 소리가 나올지 예측할 수 없는데도 무척이나 편하다. 음악의 분위기와 비슷하게 앨범커버까지 참 심플하다.

이 앨범은 쉽게 질리지가 않는다. 보통 한 앨범을 많이 듣다보면 각각의 곡들의 멜로디를 외우는 것은 물론 다음에 무슨 곡이 나오는 것까지 외우게 되고 결국은 질리게 되는데 이 앨범은 그렇지가 않다. 지금이 몇번 곡인지도 모르겠고, 곡의 어느 부분인지도 모르겠고, 곡이 과연 다음 곡으로 넘어가긴 한건지 그것도 모르겠다. 진행 정도도 파악할 수 없는 판이니 질림도 전혀 없다.

나는 그동안 풍부하기만 했던 음악에 지친 것은 아닐까. 악기가 늘어나고 효과가 늘어나면 귀가 즐겁기는 하지만 그 사이에서 어떤 여유를 찾기는 힘들다. 독일 퓌센의 노이반슈타인 성안에 들어갔을때 처음에는 천장까지 빈틈없이 그림이 그려진 내부를 보고는 굉장히 아름답다고 느꼈지만 그런 방을 계속 지나가는 동안 결국엔 지쳐버렸던 기억이 난다. 나중엔 여기서 살면 얼마나 답답할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게 넓은 방에서 나는 밀실의 공포 비슷한 것을 느꼈다.

사람은 무엇에든 익숙해지면 그것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다. 조르바는 무척이나 좋아했던 체리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체리를 배터지도록 먹는 수법을 썼다. 그 후 조르바는 체리를 절대 먹지 않았다. 난 감각의 과잉을 느낄 때 조르바 생각을 하곤 하는데 이 음반도 생각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