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Write down the problem.
2. Think very hard.
3. Write down the solution.
1. Write down the problem.
2. Think very hard.
3. Write down the solution.
나의 직업 때문인지 내 주위에 출몰하는 남자들의 거의 반수는 속칭 인텔리라고 불리는 남자들이다.
그러나 나머지 반은 다르다. 지적인 남자들임에는 틀림없으나 인텔리라는 한마디로 일축하기에는 망설여지는
남자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남자 보는 눈이 있기 때문이라고 자화자찬하지만, 그렇지 않은 쪽의 남자들을
이제 살펴보고자 한다. 즉 조금도 섹시하지 않은 남자들이다.
우선 그들의 첫번째 특징은 속칭 지적인 직업에 종사한다. 대학교수나 저널리스트나 아무튼 머리를 쓰는
직업이라면 뭐든 좋다. 먼저 양해를 구하지만, 이런 직업을 가진 남자가 모두 섹시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그들 가운데에도 섹시한 남자들은 많다. 또 이런 종류의 직업이 인텔리한 남자의 필요조건의 하나란 것은
누구나 찬성할 것이다.
두번째 특성은 육체적으로는 어느 선까진 간다고 평해도 좋을 남자들이 많다. 요즘은 인텔리라 해도
체위가 향상되어서인지 옛날처럼 희멀건한 얼굴의 수재형은 드물어졌다. 그 뿐인가.
옷입는 취미도 나쁘지 않아 일반적인 기준으로는 멋쟁이라 해도 좋겠다.
사회적 지위에 육체, 그 다음은 당연히 경제력이 뒤따르나, 이면에서도 그들은 어느 선까진 간다.
대학에서 받는 월급은 적고, 잡지 우너고료도 10년전부터 변함이 없는 참상이지만, 요즘은 잡지도
숫자만은 엄청나게 늘어났을 뿐 아니라 기업체의 간행물도 모래알만큼이나 많다. 그러니 건당 원고료나 강연료가
싸다 한들 수만 채우면 그것도 무시 못 한다. 대학에서 받는 월급은 주택구입용 은행이자로 다 없어진다고
호언하는 인털리도 생기는 마당에 이렇게도 좋은 조건이 모였는데 어째서 매력이 없을까.
바로 이 점이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다.
이들의 공통적인 네번째 특징이지만, 도대체 이 남자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나로서는 도통 모르겠다는
점이다. 그들은 잡지나 신문에 갈겨대고 텔레비전에서 지껄여대루 뿐만 아니라 요즘 부쩍 일고 있는 무슨무슨
심포지엄 같으 데서까지 마구 지껄여대지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지 모르겠다.
물론, 말하는 내 쪽이 이상하단 소리를 들을 지 모르지만.
이런 남자들이 얼마나 써대고 지껄여대든, 자기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기보다는 ‘해설’하는 쪽에 열심이기
때문이리라. 이런 남자들의 입버릇은 ‘학문적으로 말하자면’이라는 한마디다. 그러나 사실은 비학문적인
것을 언뜻 학문적으로 정리하여 말할 뿐이다.
세상 살아가는 일이 전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별볼일 없는 현상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만화를 그리는 사람과 그것을 읽는 사람이 있다. 만화를 그리든 읽든 그건 제 마음이다. 그러니
그들을 비난하지도 않거니와 찬양하지도 않는다. 나 자신이 만화를 싫어하기는 하지만.
즉 이건 취미의 문제로 싫고 좋은 것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현상을 아주 그럴듯 하게 이유를 찾아내어
‘해설’한 논문을 읽으면 소름이 끼친다. 만화를 그리든 읽든 그건 그들 맘이니 인정하지만, 그걸 ‘해설’하는
사람이 나는 싫다. 이런 현상을 지적인 시점에서 정리하여 이른바 지적이지 못한 대중에게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지식인의 사명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 반발심이 울컹 올라오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참견은 관두고 제 공부나
하시지 하고 쏘아주고 싶은 심정이다.
해설쟁이가 흔해지는 요즘의 현상이야말로 지적이지 못한 현상의 두드러진 점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해설쟁이가 해대는 말을 들으면 어느 부분도 이거다 싶은 곳이 없다. 그들 육체도 과연 찌르면 빨간 피가
흐를까 싶다.
이런 남자들의 다섯번째 특징은 수라장을 거쳐오지 않은 약함이라고나 할까. 늘상 머릿속에서만 처리하는 것에
익숙해진 인텔리는 상대방의 체험에 근거한 생각에 부딪치면 의외로 간단히 허점을 보인다.
정치든 외교든 경제세계도 좋다. 수라장은 인간이 사는 어느 곳에나 있다. 수라장을 거친 체험을 가진 사람은
‘배수진’ 속을 뚫고 나오는 괴로움이나 쾌감도 알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카드를 어디서 어떻게 쓰는지도
알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한 줄의 글자나 한마디 말에도, 응축된 ‘힘’이 달라진다. 즉 박력이 단연 틀려진다.
따라서 그런 글이나 말을 받는 쪽도 그만큼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그 결과 직접 읽고 들은 사람들은 스스로
피가 뛰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피가 뛸 대는 전신이 흔들리는 쾌감을 얻을 것이다.
최근에 어느 곳에서 열린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할 기회가 되었다. 출석자 가운데는 미국 대통령 전보좌관
브레진스키와 캐나다 전 수상 트뤼도가 있었다. 기조강연을 한 것은 브레진스키로 그답게 소련과 미국의
대립관게와, 그것에 관한 일본의 입장과 역할에 대해 강경조로 일장 연설을 했다. 그것을 듣고 있던
트뤼도의 차례가되었다. 그는 입을 열자마자, 아프리카의 어느나라 수상에게 들었다며 이런 말을 했다.
코끼리가 싸움을 하면 초목이 짓밟혀 난처해지지만, 코끼리가 섹스를 해도 초목은 같은 결과를 입습니다.’
이것은 미국이나 소련이니 심지어 일본까지 들먹이며 대국의 식을 드러낸 ‘고차원적’인 논의를 한 브레진스키에
대한 참으로 신나는 맞수였다. 대국도 아닌 주제에 논조만은 대국적이던 일본의 인텔리 남자들에 대한
통렬한 풍자이기도 했다. 역시 15년이나 한 나라의 수상을 지낼만 했다. 그는 가슴 단춧구멍에 언제나 꽂고
다니는 빨간 꽃으로만 유명한 남자가 아니었다.
이 회의장에는 일본의 대학교수도 열석해 있었으나 전혀 상대가 되지 못했다. 언어로 승부하는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무기를 쓰는 법조차 몰랐다. 이런 남자들리 흔히 범하는 어리석은 해설만으로 시종일관했던 것이다.
어째서 자기 생각을 확실히 드러내지 못하는가. 아니 혹시나 자신의 소견이 없는 것이야말로 학문적이라고
믿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인텔리 남자의 여섯번째 특징은 사람을 죽인 경험이 없는 것이라고 요즘 나는 생각하고 있다.
이 말은 살인행위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육체적으로 남을 말살하지 않더라도 정신적으로 죽이는 것도
당연히 남을 죽인 경험에 들어간다.
신은 고약하게도 무언가를 해보려는 자에게 그것을 표현하려는 단계에서 이런 종류의 ‘살인행위’를 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인간세상을 만드신 모양이다. 이 세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살생행위와 가장 먼 곳에
살고있다. 인텔리 남자가 섹시하지 않은 까닭은 독도 약도 되지 못하는 그들 특유의 사고 방식에 있음이
틀립없다.
남자가 여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은 어차피 그 여자를 안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이고, 여자가 남자의
매력을 느끼는 것 역시 그 남자 품에 안기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일 것이다.
머릿속에 든 것이나 용모도 이런 종류의 건전한 욕망을 보강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건전하고 자연스럽고
인간의 본성에 가장 충실한 이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 그 사람이 가진 매력이다.
인텔리 남자가 섹시하지 않은 것은 보강하는 정도밖에 안 되는 삶에 최고의 가치를 두면서 살기 때문일 것이다.
하찮은 것을 하찮은 것이라고 잘라 말할 수 있는 자연스러움이 없다. 그 뿐인가.
그럴듯한 이유를 얼마나 잘 생각해내느냐에 전력을 집중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남자들에게 ‘수컷’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인텔리 남자의 마지막 특성은, 조그만 야심밖에 없다는 점이리라. 욕망은 있으나 그것이 콩알만한 크기밖에
안 된다. 그러니 정치가가 뭐라 부추기면 창피할 정도로 홀랑 넘어간다. 실업계의 어느 위인이 접대해준다면
기생보다 먼저 뛰어가는 판이다. 기생은 화대라도 받으나 인텔리는 하룻저녁 얻어먹을 뿐인것을, 이보다
궁상스런 행위가 있을까.
무언가 자기 맘을 표현하고 싶은 것이 있어 그것을 하기에 권력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상관없다.
회색이든 검정이든 권력을 이용한다면 그것은 개의치 않겠다. 그러나 이용되는 것에 자기 만족을 하고 있다면
그건 그저 봐주기 힘든 꼴불견이란 말이다.
우리 여자들은 남자들을 존경하고 싶어 근질근질하다. 남자들이여, 기대를 저버리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사랑을 누구에게 바친단 말인가. 자식에게 바쳐보라지만, 자식이 다 큰 다음에는
또 어찌하는가.
– 시오노 나나미 –